[내일을 열며-김혜림] 100점 만점에 61.2점

입력 2010-11-22 21:53


10점 만점에 10점, 100점 만점에 61.2점. 앞의 것은 그제 치른 2010 아시안게임 여자 양궁 단체전 결승 2차 슛오프의 궁사들 점수다. 결승서 만난 중국 여궁사들 실력도 만만치 않아 연장전까지 치렀다. 연장 2차전에서 주현정 기보배 윤옥희 선수가 각각 골드존을 맞혀 27점을 기록한 중국을 물리치고 금메달을 안았다.

낙제점을 간신히 면한 뒤의 것은 우리나라의 지난해 성평등 점수다. 여성가족부는 지난주 2009년 국가성평등 지수는 61.2라는 ‘2010년 한국의 성평등 보고서’를 내놓았다. 100은 완전평등, 0은 완전 불평등한 상태다. 성 평등지수는 가족, 복지 보건, 경제활동, 의사결정, 교육 직업 훈련, 문화 정보, 안전 등 8개 부문으로 나뉘어져 있다. 부문별로 성 평등 수준을 잘 나타낼 수 있는 지표 20개를 선정한 뒤 이를 통해 산출했다. 보고서는 올해부터 해마다 내놓을 예정이다.

부문별로 보면 정말 한심하다. 국회의원 당선자, 5급 이상 공무원, 기업의 과장급 이상 관리자 수 등을 지표로 산출해 낸 의사결정 부문은 겨우 23.7점으로 남녀간 불평등이 심각한 상태다. 가사노동, 셋째아 출생성비 등을 지표로 살펴본 가족부문도 57.1점으로 낙제점이다. 이번 조사 결과를 보면 사회의 유리천장은 아직도 굳건하고, 가정 내 남존여비(男尊女卑) 의식도 크게 달라진 바 없는 셈이다. 그럼에도 남성들 사이에서 역차별이란 말이 나오는 것은 왜일까. 뿐만 아니라 여성들 중에도 ‘이만하면 되지 않았나’ 하는 이들이 적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2008년 호주제 폐지로 법적으로는 남녀평등이 90% 이상 실현됐다. 하지만 일상생활에서는 여전히 차별이 존재한다. 남녀고용평등법(1987년)이 제정된 지 오래됐지만 여성의 급여는 남성의 63.5%(2009 고용노동부 자료)밖에 안 되는 것이 대표적인 예다. 법과 현실의 괴리와 함께 착시 현상도 한몫한다. 정치권이 대표적인 경우다. 청와대부터 한나라당, 민주당, 자유선진당의 대변인이 여성들이어서 남성 전유물로 여겨지던 정치판도 여성들이 장악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는 그렇지 못하다. 여성 국회의원 수는 41명으로 전체국회의원의 13.7%밖에 안 된다.

아시안게임 4연패를 이룬 여성 양궁 선수들의 훈련 내용을 들어보면 그저 열심히 한 정도가 아니다. 선수들은 담력을 기르기 위해 뱀을 목에 두른 채 활을 쏘기도 했고, 일방적인 응원소리에 적응하기 위해 야구장에서 활시위를 당겼으며, 바람에 흔들리지 않기 위해 서귀포에서 특별훈련을 했단다.

쉽게 허물어지지 않는 남녀불평등이란 벽을 넘기 위해선 이 땅의 여성들에게도 특훈이 필요할 듯하다. 우선 자식 양육은 부모의 일임을 인식하고 실천해야 한다는 당부를 하고 싶다.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 사실을 특별한 무엇인양 얘기하는 것을 용서하시라. 아이 낳고 키우는 일이 오롯이 엄마 몫인 것이 현실이니 어쩌겠는가. 워킹맘이 10개월 임신기간과 산고(産苦)를 겪고 3개월 산휴 동안 아이를 키웠으면 그 다음은 워킹대디가 맡아야 마땅하다. 신생아에게 첫 1년은 매우 중요한 시기다. 워킹맘의 산휴가 끝나면 나머지 기간에는 워킹대디가 육아휴직이나 탄력근무제를 활용해 육아를 전담하자.

남편의 육아휴직은 관습적으로는 물론 아내 급여가 적은 가정에선 경제적으로도 쉽지 않은 선택이다. 뱀을 목에 두르고 활을 쏘는 심정으로 남편들에게 육아휴직을 요구하자. 육아분담이 이뤄지면 가사분담은 절로 따라올 것이다. 또 여성 혼자 짊어졌던 임신 출산 육아를 남성이 나눠지면 동일노동 동일임금의 실현도 앞당길 것이고, 유리천장도 자연스레 무너질 것이다. 궁극적으로 출산율도 높아질 수 있다.

남녀평등은 불평등 때문에 불편한 여성들이 일궈낼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이제 다 왔다고 마음 놓은 여성들이 있다면 다시 마음을 다잡자. 국가 성평등 지수 100이라는 ‘한국의 성평등 보고서’가 나오는 날까지.

김혜림 문화과학부 선임기자 ms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