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인데…’ 무너진 신뢰, 식어가는 온정… 공동모금회 비리 사태 일파만파

입력 2010-11-22 18:25


“사회복지공동모금회 비리가 공개된 뒤 기부자들은 ‘뭘 믿고 기부하겠느냐. 내 후원금은 잘 쓰고 있느냐’고 물어봐요. 특히 개인 기부자들이 동요하고 있어요.”(어린이재단 관계자)



국내 유일 법정 모금기관 사회복지공동모금회의 총체적 비리가 보건복지부 감사로 드러나면서 연말 성금 모금에 나서야 하는 단체들은 불똥이 튈까 우려하고 있다. 이들에게서 지원을 받는 복지기관들은 사업에 차질을 빚을까 마음을 졸이고 있다.

아동복지기관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관계자는 22일 “한 달 성금은 보통 40억∼50억원”이라며 “11, 12월에 성금이 집중되는데 올해는 타격이 클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하반기 재단이 모은 돈은 302억원으로 10∼12월 모금액이 183억원(60.6%)이었다. 이 추세라면 올 10∼12월 모금액은 지난 7∼9월 153억원보다 많아야 하지만 재단은 어려울 것으로 전망했다. 재단 관계자는 “9월까지 모금액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늘었지만 후원자마다 공동모금회 사건을 언급하는 상황이어서 연말 성과를 확신하기 어렵다”며 “기부 문화를 부정적으로 인식하게 될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크다”고 전했다.

사회복지기관 ‘아이들과 미래’ 관계자는 “공동모금회 사건 이후 기부를 중단한 사람은 아직 없고 모금액도 지난해와 비슷하다”면서도 “한 단체의 비리로 전체 기부 문화가 위축될 수 있어 다들 걱정”이라고 말했다. 이 기관의 모금액은 매달 2억원 안팎으로 연말에는 두 배로 늘어난다. 지난해 12월 모금액은 5억원 정도였다.

정작 타격이 가장 큰 곳은 공동모금회다. 올 들어 지난 9월까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1.6% 많은 성금을 모은 공동모금회는 직원비리가 알려진 지난달 이후 지금까지 개인기부 1100여건과 기업후원 20억원 상당이 취소됐다. 지난달 모금액은 81억9700만원으로 지난해 10월보다 4.7% 감소했다.

공동모금회로부터 지원금을 받아온 복지기관들은 참담한 심경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중국 단둥 지역 저소득층 농촌가정 아동 80명에게 무료급식을 제공하는 가나안농군운동세계본부는 전체 예산 5200여만원 가운데 83.5%를 공동모금회에 의존하고 있다. 본부 관계자는 “2차 사업을 신청하려 했는데 지원이 끊기면 사업진행이 불가능하다”며 “공동모금회 사업은 국내외 빈곤 문제 해결과 직결돼 있어 저소득층이 가장 큰 피해를 본다”고 말했다.

복지부 감사 결과 발표 이후 서울 정동 공동모금회 사무실에는 항의 전화가 빗발쳤다. 연말 모금 활동 준비로 바쁠 때인데 직원들은 수화기를 들고 사과하느라 다른 일을 못하고 있다. 공동모금회는 인터넷 홈페이지에 ‘사과합니다. 다시 태어나는 모금회를 위해 애정 어린 쓴소리를 부탁합니다’라고 사과문을 띄웠다. 하지만 게시판에는 비리를 꾸짖는 글이 끊이지 않았다. 홈페이지는 접속자가 몰려 한때 접속이 중단됐다.

공동모금회 관계자는 “내부 분위기가 참담하다”며 “아침 직원 모임 때는 여기저기서 흐느껴 우는 소리가 들렸다”고 전했다. 정성진 전 법무부장관 등 6명으로 구성된 비상대책위원회는 23일 오전 모임을 갖고 차기 이사회 구성과 개혁쇄신안 등을 논의키로 했다.

강창욱 임세정 최승욱 기자 kcw@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