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도는 ‘녹색금융’… 해법은 없나
입력 2010-11-22 18:39
녹색금융이 겉돌고 있다. 녹색금융은 친환경, 신재생에너지, 저탄소 산업 등에 돈을 투자·지원하는 상품이다. 넓게는 탄소시장 개설, 녹색금융상품 개발 등을 기반으로 한 새로운 형태의 금융이다.
정부는 친환경 녹색성장을 새로운 경제동력으로 선정하며 녹색산업·금융에 속도를 붙이고 있다. 하지만 현장은 춥기만 하다. 녹색기업 10곳 가운데 8∼9곳은 녹색금융을 이용조차 못하고 있다. 정부가 조성한 녹색펀드는 겨우 8개 기업이 자금 지원을 받았을 정도다.
우리 녹색기업은 ‘돈 가뭄’에 세계 시장에서 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다. 부품 수출로 지난해 20억 달러 실적을 올렸을 뿐 녹색 플랜트(풍력·태양광 단지 등) 수주·건설 실적은 없다. 세계 녹색산업 시장은 오는 2020년에 3조1730억 유로 규모로 커질 전망이다.
◇낮잠 자는 돈=22일 수출입은행과 금융연구원에 따르면 국내 녹색금융은 지난 2월 말 현재 기업대출 및 녹색 프로젝트 파이낸싱(PF)이 5조6076억원, 녹색 개인대출이 810억원에 불과하다. 신용보증기금과 기술보증기금에서 보증지원을 하고 있지만 대부분 상품은 기업대출이다.
정부가 활성화를 위해 네덜란드의 그린펀드스킴(Green Fund Scheme) 같은 녹색인증제를 도입했지만 민간 참여는 저조하다. 그린펀드스킴은 정부가 특정 프로젝트에 인증서를 발급해주면, 은행이 다른 펀드 대비 1∼2% 낮은 수익률을 보장하는 펀드를 조성해 기업에 저리로 대출해주는 구조로 운영된다. 펀드 가입자는 2.5% 세금 혜택으로 낮은 수익률을 만회한다.
정부는 올 초부터 녹색인증을 받은 기업에 지원하는 자금에는 세금 혜택(이자소득세 15.4% 면제)을 주고 있다. 그러나 녹색인증제와 연계한 녹색예금·채권 상품은 없다.
녹색기업에 투자하는 녹색펀드도 개점휴업 상태다. 지식경제부가 추진하고 있는 녹생성장펀드는 투자 집행률이 7.7%다. 중소기업청의 한국모태펀드는 165개 펀드 가운데 신성장동력 관련 펀드가 10개도 안된다.
◇‘엇박자’ 녹색금융=체계적 인프라는 물론 민간자본을 끌어들일 유인책이 없다. 구정한 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민간 금융기관이나 정부 모두 녹색금융에 대한 전문성이 부족하다. 리스크, 수익성을 따질 수 없다보니 민간자본이 외면하고 정부도 망설이는 것”이라고 말했다.
녹색펀드는 엇박자가 나고 있다. 펀드를 운용하는 자산운용사는 20%대 고수익을 원하는데 녹색기업이 거둘 수 있는 수익은 최고 10%에 그친다. 20년 이상 장기로 돈을 굴려야 하는데 운용사들은 최고 3년 단기투자를 하고 있다. 수출입은행 관계자는 “국내 정책기관 주도로 조성한 펀드는 투자 지역이 국내로 한정돼 해외 진출 지원이 없다. 중국 기업이 정부·민간의 전폭적 자금지원을 등에 업고 빠르게 성장하는 것과 대조적”이라고 지적했다.
이 때문에 녹색기업은 가장 큰 경영애로로 자금조달을 꼽는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지난 6월 녹색기업 300곳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경영애로 사항으로 자금조달(36.1%)이 가장 많았다. 녹색금융을 이용한 경험이 있는 기업은 14.4%에 불과했다.
LG경제연구원 이지홍 책임연구원은 “시장 환경을 조성해 녹색금융을 수익을 올릴 수 있는 상품 개념으로 부각시키고 민간자본이 자발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찬희 기자 ch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