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즈벡 이어 카자흐스탄서 사역 중인 이민교 선교사

입력 2010-11-22 20:42


“이슬람 속 소외된 농아인 수화 전도로 복음의 그늘 지우죠”

일찌감치 원불교에 헌신한 몸이었다. 대학 시절부터 원불교 중앙총부 교무 양성기관인 ‘학림사’에서 숙식을 하며 원불교 지도자가 되려고 했다. 어릴 적부터 종교심이 강해 가난한 이웃이나 장애인에게 관심이 많았다. 그의 꿈은 자신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 편에 서서 그들의 필요를 채워주는 것이었다. 소록도 한센병 환자를 도우며 부처를 전하고 싶었다. 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오히려 소록도 사람들이 그를 보고 불쌍하다고 했다. 환자들의 마음을 얻기 위해 눈썹을 밀었고 침까지 핥아먹기도 했었다. 하지만 돌아오는 것은 같은 말뿐이었다. ‘예수 믿어. 예수 믿으면 행복할 텐데.’

22년 전 그날도 평소처럼 새벽에 일어나 목탁을 치며 염불을 했다. 그런데 갑자기 이상한 말을 중얼거렸다. “며칠 후 며칠 후 (딱딱딱) 며칠 후 며칠 후 요단강 건너가 (딱딱딱)” 이게 무슨 말이던가. 그것은 소록도 장례식에서 들었던 찬송가였다. ‘해보다 더 밝은 저 천국’ 후렴구였다. 멈추지 않던 ‘며칠 후’는 갑자기 뜻 모를 소리로 바뀌었다. 자타 공인 원불교 교무 후보생에게 방언이 터진 것이었다. 카자흐스탄 농아인에게 복음을 전하고 있는 이민교(47) 선교사 얘기다.

이 선교사는 청각장애를 가진 농아인을 상대로 복음을 전하는 특이한 선교사다. 1997년 우즈베키스탄에 이어 지금은 카자흐스탄에서 활동하는 그를 최근 만났다. 왜 농아인을 상대로 복음을 전할까.

“이슬람권 국가에서는 종교적 이유 때문에 장애인을 돕는 사람들이 많지 않습니다. 겉으로 멀쩡해 보이는 농아인을 돕는 사람은 더더욱 없습니다.” 이 선교사는 무슬림이라는 잃어버린 영혼뿐 아니라 무슬림 사회에서 버림받은 장애인을 위해서라고 했다.

“불교에서는 장애를 전생의 죄 때문으로 봅니다. 그런데 이슬람교에서는 장애인을 ‘신이 버린 사람’으로 말합니다. 모스크 출입도 제한됩니다. 어쩌면 불교보다 이슬람교가 장애인에 대해 더 비정한 관점을 갖고 있는 셈이죠.”

그런 점에서 축구는 농아인의 기를 펴는 좋은 도구였다. 우즈벡에서 그는 농아인들을 모아 축구경기를 열었고 여러 도시에서 축구경기를 통해 농아인들을 모았다. 100여명을 모아 3년 만에 30명의 선수를 길러내 농아인 아시안게임 4강까지 오르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이 선교사는 축구를 하면서 자신의 이야기를 많이 했다. 이슬람 국가 특성상 전도는 금지돼 있지만 신앙 간증은 가능했다. 소록도에서의 기이한 체험과 하나님의 은혜를 농아인들에게 들려주었다. 이를 통해 몇 명의 농아인들이 하나님께 돌아왔다.

이 선교사의 중점 활동은 예수 믿는 농아인들이 또 다른 농아인들을 섬길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각국의 수화는 다르지만 구소련 지역 15개 국가와 몽골, 그리고 동유럽 지역은 수화가 비슷했다. 이는 선교사라는 이유로 2001년과 2003년 우즈벡에서 두 차례 추방을 당하고도 카자흐스탄에서 계속 사역을 할 수 있었던 이유가 됐다.

카자흐스탄에서 그는 농아인들에게 일터도 제공하고 있다. 이슬람 사회는 세 가지 서클이 존재한다. 개인의 삶과 모스크, 그리고 일터다. 세 가지가 서로 맞물려 돌아간다. 이슬람 신앙공동체인 움마의 핵심이었다. 그런데 이 공동체에서 이탈하면 불이익을 당한다. 개종 사실이 알려지면 학교를 졸업하지 못하며 일자리도 잃게 된다. 더구나 장애인들은 개인적 삶을 유지하기도 힘든 구조인데다 모스크 출입도 못하고 일자리를 얻기란 하늘의 별 따기였다.

그렇게 나온 것이 ‘일터교회’였다. 농아인을 위한 신앙공동체로 사업을 하면서 경제 자립을 했고 그 속에서 예배를 드렸다. 일명 ‘춤추는콩나물교회’와 ‘행복한두부교회’ ‘천냥하우스교회’ ‘뻥튀기교회’ 등은 그렇게 세워졌다.

이 선교사는 선교사를 ‘선교사(先敎死)’로 해석한다. 먼저 가르치다 죽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복음을 위해 하나님의 양을 먹이다 죽는 사람이라고 했다. 그러나 선교는 고행(苦行)이 아니었다.

“제 삶 자체가 고행에서 희행(喜行)으로의 전환이었습니다. 예수를 믿는 것은 기쁨입니다. 그 기쁨을 전하고 싶을 뿐입니다.”

신상목 기자 smsh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