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 공동체 의식 걸림돌은 무엇인가?

입력 2010-11-22 17:48


공통의 문명을 바탕으로 경제공동체에 이어 국가연합까지 창설한 유럽의 전철이 동아시아에서도 가능한 것일까. 한자와 유교문화 등 문명이라 부를 수 있는 소프트웨어의 공통점은 누구나 인정할 수밖에 없지만, 지역 협력의 측면에서라면 동아시아는 분명 유럽보다 뒤처진다.



‘역사적 관점에서 본 동아시아의 아이덴티티와 다양성’(동북아역사재단·사진)은 밀접한 관계에도 불구하고 상반된 길을 걸어온 동아시아 공동체들의 근대 인식을 성찰하는 책이다. 13명의 저자들은 경제적으로 상호 의존도가 갈수록 높아지는 현실에서도 동아시아 국가들이 서로에 대한 불신을 완전히 지우지 못하는 이유로 역사 문제를 든다. 일본에 식민지배 혹은 일방적인 침략을 당하고, 원주민 학살의 기억마저 안고 있는 한국·중국·대만의 역사인식은 뿌리가 깊다. 거기에 일본의 자의적인 역사인식이 더해진다. “전쟁은 이미 종결됐다”고 주장하는 전후세대의 등장, 잊혀질 만하면 튀어나오는 야스쿠니 신사 참배 등이 그것이다.

중국사회과학원 근대사연구소의 부핑 교수는 “(자민당이 거대 여당을 확립한) 55년 체제 후 일본 사회에서는 대동아전쟁을 긍정하는 역사관의 회고적 풍조 현상이 보편화돼 있다”고 지적했다.

그렇다고 피해자 입장에 있었던 다른 나라의 역사인식에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도 각 국가의 근대사 이해의 수준은 내셔널리즘의 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1930년대 항일항쟁을 일으킨 대만 원주민 토벌 사건인 ‘우서사건’을 보자. 대만은 이 사건을 ‘중화민족이 일본 식민통치의 폭정에 저항한’ 영웅적인 사건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그러나 20세기에 들어와서 생겨난 중화민족이라는 개념을 식민지 상태였던 대만에, 그것도 원주민들에게 적용하는 것은 온당한가? 대만 국립청궁대학교 우미차 교수는 “역사 서술의 단위가 민족주의의 범주와 더 이상 일치하지 않을 때에는 민족사·국가사를 이해하는 데 어려움을 겪게 마련이다. (중략) 동일한 역사적 사건에 대해서도 전혀 다른 해석을 내놓게 되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20세기 중반 식민지 해방과 국민국가 설립의 분위기를 타고 건국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중국은 제국적 색깔을 강하게 띠고 있고, 일본은 향수 속에서 태평양 전쟁을 회고한다. 한국은 민족과 분단이라는 딜레마에 갇혀 있다. 이런 상황에서 독일과 프랑스가 공동으로 집필한 역사 교과서 ‘1945년 이후의 유럽과 세계’ 동아시아판은 요원할 수밖에 없다. ‘불신’과 ‘반목’은 아직도 동아시아의 현재를 짚는 유효한 키워드다. 그것 자체가 동아시아의 아이덴티티일지도 모른다.

양진영 기자 hans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