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쟁 볼모된 예산안 시한… 2010년에도 물건너가나

입력 2010-11-21 21:20


국회가 올해는 예산안 처리 시한에 맞춰 제대로 예산 심사를 끝낼 수 있을까. 우리 헌법 54조 2항은 ‘국회는 회계연도 개시 30일 전까지 예산안을 의결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를 역산하면 12월 2일이 예산안 처리 시한이다.



하지만 15대 국회 이후 지금까지 예산안 처리 시한을 지킨 것은 1997년과 2002년 단 두 차례뿐이다. 둘 다 대선이 있던 해로, 여야가 각종 쟁점 법안에도 불구하고 대선 일정 때문에 서둘러 처리했다. 그나마 17대 국회 이후로는 매번 시한을 넘겨왔다. 12월 31일 가까스로 처리한 경우도 여러 번이다. 2004년에는 국가보안법과 과거사법 등 4대 쟁점 법안을 놓고 여야가 첨예하게 대립했다. 2005년엔 사립학교법에 반대한 한나라당이 장외투쟁에 나서면서 예산 심사에 불참해 지연됐다. 2007년엔 대선이 있는 해였음에도 대선 승리를 장담한 한나라당이 대선 이후 처리 쪽으로 가닥을 잡으면서 시한을 맞추지 못했다. 2008년에는 종부세 등 감세 논란이 있었고 지난해 예산심사는 4대강 때문에 파행을 거듭하다 결국 12월 31일 여당이 단독 처리했다.

올해 여야는 예결특위에서 22일까지 종합정책질의를, 23∼26일 부처별 심사를, 29일∼다음 달 1일 계수조정소위 심사 활동을 한 뒤 2일 예결위전체회의에서 의결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민주당이 청목회 입법 로비 수사에 반발하고, 민간인 불법 사찰에 대한 국정조사·특검 등을 요구하며 예산 심사를 거부하면서 며칠째 차질을 빚고 있다.

국회의 예산안 늑장 처리 구태가 반복되는 것은 우선 헌법에 보장된 심사기일 자체가 60일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미국 의회는 예산편성권을 갖고 있고, 프랑스나 일본은 예결위가 상설 운영된다. 김춘순 국회 예결위 전문위원은 “정기국회 기간 동안 국정감사도 해야 하고 각종 법안도 처리해야 하기 때문에 국감 시기를 조정하든, 예산심의 기간을 늘이든 대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가장 큰 이유는 과거 사례에서 드러나듯, 야당이 예산안 심사를 쟁점 법안 처리나 민감한 정치 현안과 연계시키는 관행 때문이다.

문제는 국회의 늑장 처리 피해가 정부와 국민에게 고스란히 돌아간다는 점이다. 헌법이 심사 시한을 둔 이유는 정부가 예산 집행을 준비할 시간을 주기 위해서다. 예산 배정 계획을 수립하고, 분기별 배정 뒤 사업 공고와 계약 체결, 자금 배정 등의 절차를 밟아야 한다. 국회에선 늑장 처리로 인한 불이익이 없지만, 정부에서는 준비 시간이 줄어들면서 사업 계획이 졸속으로 이뤄지는 등 부작용이 생길 수도 있다는 얘기다.

특히 지방자치단체와 중앙정부 예산이 별도로 분리돼 있지 않아 지방자치단체와 정부 산하기관들 역시 피해가 크다. 예산 전문가들은 “중앙정부의 국고보조금과 출연금 의존도가 높은 지자체로서는 수입 규모를 확정할 수 없기 때문에 편법적으로 자체 예산을 편성하거나 추경예산을 고민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하고 있다.

김나래 기자 nar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