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원심분리기 2000개 가동중”…정부 “심각한 문제” 6자 당사국과 협의 착수

입력 2010-11-22 00:26


美 핵전문가 헤커 교수 방북 때 시설 공개

북한이 지난주 방북했던 미국의 핵 전문가 지그프리드 헤커 스탠퍼드대 국제안보협력센터 소장에게 원심분리기 수백개를 갖춘 대규모 우라늄 농축시설을 보여준 것으로 드러났다.

헤커 교수는 북한 당국이 ‘원심분리기 2000개가 이미 설치돼 가동 중’이라고 언급했다고 전했다. 원심분리기는 핵무기로 전용할 가능성이 높은 고농축우라늄(HEU) 생산을 위한 핵심 장비다.

북한의 시설 공개에 따라 미국은 한국 등 동맹국을 상대로 긴급히 브리핑에 나서는 등 북핵 사태가 ‘플루토늄 폭탄’에 이어 ‘우라늄 폭탄’이라는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 특히 최근 3차 핵실험설, 경수로 건설 등과 맞물려 한반도가 또다시 핵 위기 사태를 맞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스티븐 보즈워스 대북정책 특별대표는 21일 밤 우리 정부와 이 문제를 협의하기 위해 방한했다. 정부도 6자회담 재개 시 고농축우라늄 문제를 의제에 포함시키는 등의 대책 마련을 위해 6자회담 당사국들과 협의에 착수했다.

헤커 교수는 20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와의 인터뷰에서 “북한 당국이 보여준 우라늄 농축시설은 이제 막 건설된 것으로 보였으며 초현대식 제어실을 통해 통제되고 있었다”면서 “수백개의 정교한 원심분리기가 설치돼 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그는 수일 전 백악관에 자신이 본 시설에 대해 설명했으며, 미 행정부도 우리 정부에 그의 설명 내용을 통보해준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등의 국제기구 조사관들은 북한을 마지막으로 방문했던 지난해 4월까지 이 같은 대규모 핵시설 존재를 인지하지 못했었다. 따라서 그 이후 북한이 이 시설을 건설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신문은 분석했다.

앞서 헤커 교수는 방북 직후인 지난 13일 베이징에서 외신기자들과 만나 북한이 평안북도 영변에 경수로 1기를 건설 중이라고 밝힌 바 있다. 당시 그는 경수로 발전 용량이 25~30㎿(메가와트)라면서 이제 막 건설을 시작했기 때문에 완공까지는 몇 년이 걸릴 것이라고 밝혔다.

북한의 우라늄 농축시설 공개에 따라 6자회담 관련국들의 대응도 분주해졌다. 미 국무부는 21일부터 보즈워스 대북정책 특별대표가 북핵 문제를 협의하기 위해 한국과 중국, 일본을 차례로 방문한다고 발표했다. 그의 아시아국 방문은 북한의 핵 도발에 따라 급히 결정된 것이다.

보즈워스 대표의 방문은 북한의 우라늄 농축시설 공개 및 영변에 건설 중인 것으로 알려진 경수로 문제 등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고 공동 대응방안을 협의하기 위한 것이다.

보즈워스 대표는 인천공항에서 기자들과 만나 “관련국과 대북 협상의 다음 단계를 논의하기 위한 것”이라며 “한국 당국자들과 만난 뒤 내일 더 길게 이야기할 시간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위성락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은 22일 오전 보즈워스 대표를 만나 미국 측 의견을 청취한 뒤 오후에는 중국을 방문해 6자회담 재개 등을 협의할 예정이다. 위 본부장은 지난주에는 일본을 방문했다.

정부 고위당국자는 “북한의 우라늄 농축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나 9·19 공동성명에 모두 배치된다”며 “사실이라면 아주 심각한 문제”라고 밝혔다.

이 당국자는 이어 “정부 차원에서 북한의 우라늄 농축 사실을 확인하기 어렵다”며 “정보 관련 사항이기 때문에 말하기 어렵지만 북측 등에서 흘러나온 얘기로 볼 때 지난해 4월 이래 (우라늄 농축과 관련한) 작업을 해온 측면이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번 원심분리기 파문으로 정부의 대북 정책이 바뀔 가능성에 대해 “북한 의도가 무엇인지 미국, 일본은 물론 필요하면 중국과도 협의해야 할 것 같다”며 “지금 북한이 어떻게든 협상 국면으로 바꾸고 싶어하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워싱턴=김명호 특파원 mhkim@kmib.co.kr, 이도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