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김애옥] 성형문화와 미인
입력 2010-11-21 17:40
지금은 구시대의 유물처럼 되어버린 미스코리아 선발대회에 대한 추억의 필름을 텔레비전으로 보았다. 모두 다 한결같은 사자머리에 수영복을 입은 모습이 조금 촌스럽기도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니 지금 보아도 정말 손색없는 자연 미인들이었다. 오히려 지금의 신세대 미인들과 다른 몇 가지 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 얼굴이 그 얼굴 같지 않고 매년 뽑히는 미스코리아 얼굴들이 저마다의 개성을 지닌 다른 얼굴이란 점이다. 그리고 지금 우리의 젊은이들이 표준처럼 느끼는 몸매보다 다소 통통한 매력이 더해 있었다. 지금은 이러한 미인대회가 여성을 상품화한다는 이유로 지상파 방송을 금하고 있지만 당시로서는 미스코리아 열풍 덕분에 지방 곳곳이 고추 아가씨다, 마늘 아가씨다, 춘향 아가씨다 해서 미인대회 열기가 일었던 시절도 있었다. 심지어 한 대학에서 오월의 여왕으로 선발되면 본인은 물론 그의 가족에 대한 신상까지도 신문에 오르내릴 정도였으니 격세지감이다.
그런데 요즘은 미인대회가 온 가족이 즐기는 축제라기보다는 연예인이 되기 위한 전초전으로 인식되고 있는 것 같다. 그렇게 목적성 있는 미인대회다 보니 프로그램 자체의 매력도 못 주고, 개성 없는 미인들이 잘 꾸며진 인형처럼 도열해 있어 씁쓸함을 느끼게 한다.
예전에도 성형은 있었지만 지금처럼 일반인에게까지 번져 가히 문화라 일컬을 만한 풍조는 아니었다. 생활의 불편함을 덜어주는 단계의 성형만을 고집하기엔 세태가 많이 바뀌긴 하였지만 단순한 쌍꺼풀 수술이나 피부 보정의 단계를 넘어 뼈를 깎는 위험과 고통을 감수하면서 자신을 변형하려는 젊은 친구들을 만나면 안타까운 마음부터 드는 것은 기성세대의 구시대적인 발상인지도 모르겠다.
성형수술을 감행해서 인생이 달라진다면, 그리고 자존감이 높아진다면 성형수술의 긍정적 가치는 인정된다. 그런데 최근 성형 사실을 당당하게 고백한 여배우에 대해 “성형의 최고봉이자 정점”이라며 “부자연스러우면서도 튀는 얼굴이 성형의 대세”라고 거침없이 말하는 성형전문의의 말에는 선뜻 동의할 수 없다.
연예인들조차도 거리낌없이 성형 사실을 커밍아웃하고, 예전 사진과 현재를 비교하는 사진이 웹상에 떠돌아다녀도 개의치 않는 세상이 되었다. 성형공화국 혹은 성형천국에 사는 우리 젊은이들은 과연 천국에 살고 있는 것일까.
나는 두세 살 때 시골집 댓돌 위에 이마를 찧어 이마 정중앙에 흉터가 있다. 상처를 수술해 주겠다는 의사 동생의 배려를 무시하고 그냥 그 상처를 간직해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드는 날이다. 그 상처가 남의 눈에 띄지 않게 사라지게 되는 기쁨이, 내 과거의 진한 추억을 덮을 만큼은 아닌 것만 같은 것이다. 추억은 자기 소유라 하지 않는가. 그 누구의 것도 아닌 나만의 것. 그래도 성형수술 후 예뻐진 친구를 보면 슬그머니 샘이 난다. 성형아, 이것이 너의 모순이자 마력이 아닌가 싶구나.
김애옥(동아방송예술대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