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박 쫓다 쪽박… “도박은 뇌기능 장애 탓”
입력 2010-11-21 21:44
도박 사건이 끊이지 않고 발생하고 있다. 유명 방송인 뿐 아니라 일반인들 가운데도 도박에 빠져 헤어나지 못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손가락을 끊고도 또 도박장을 찾은 사람, 아들의 수술비를 들고 화투판으로 직행한 아버지, 집에서 쓰고 있는 냉장고를 팔아서 ‘판돈’을 마련한 도박꾼….
도박은 중독성이 강해 한번 손을 대면 끊기가 무척 힘들다. 그렇다고 자포자기할 수만은 없다. 도박 중독에서 벗어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한국중독정신의학회(이사장 김성곤)는 최근 중앙대병원 4층 동교홀에서 2010년도 추계 학술대회를 열고, 이 문제를 집중 토론했다. 좌장을 맡아 토론회를 이끈 강북삼성병원 정신과 신영철 교수는 “중독이 다 그렇지만 도박 중독의 치료도 쉽지가 않다”고 말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중독자들이 도무지 치료 받을 생각을 안 하기 때문이다. 하루가 멀다 하고 도박장을 찾고, 수천만원이나 수억원의 빚을 지고도 자신은 중독자가 아니라고 우기기 일쑤라는 것.
정신과 의사들은 도박 중독을 ‘90일 병’이라고 부른다. 굳게 결심하면 일정기간 끊을 수 있지만 평균 90일이 한계라는 뜻이다. 따라서 도박 중독 치료의 핵심은 ‘도박을 끊게 하는 것’이 아니라 ‘끊은 걸 얼마나 유지시키는가’에 있다고 신 교수는 말했다.
◇왜 도박에 빠지는가?=현대 정신의학은 도박에 빠지는 이유를 단순한 습관의 문제가 아니라 뇌기능의 이상에서 찾고 있다. 인간의 뇌에는 쾌락을 담당하는 회로가 있다. 이 회로가 선천적으로 부실하거나 어릴 때부터 잘못 형성된 경우 쉽게 중독에 빠진다는 보고가 나오고 있다. 쾌락을 추구하는 회로에 이상이 있는 사람이 술을 마시면 알코올 중독, 도박을 하면 도박 중독이 될 가능성이 많다는 얘기다. 도박의 쾌감에 빠지면 뇌에서 다량의 쾌락물질, 즉 도파민이라는 신경전달물질이 분비된다. 이 물질이 떨어지면 뇌는 다시 신호를 보낸다. 그래서 똑같은 행동을 반복하게 된다. 도박중독은 더 이상 마음이나 의지의 병이 아닌 뇌의 병, 즉 뇌기능장애인 셈이다.
물론 성격적 측면도 무시할 수 없다. 도박 문제로 병원을 찾는 중독자 유형은 바로 자극적인 게임을 추구하는 성향의 소유자가 많다. 대부분 호기심도 많고 끊임없이 강렬하고, 새로운 자극을 찾아나서는 탐닉형으로, 어딘가에 한번 빠지면 뿌리를 뽑는 사람들이다.
정서적인 이유로 도박에 빠지는 경우도 있다. 이들을 현실도피형 중독자라고 부르는데 도박을 하는 동안 만사를 잊을 수 있다는 이유로 도박에 몰입한다. 이들에겐 친구도 별로 없고, 사회 활동도, 취미 활동도 거의 안 하는 경우가 많다. 우울하고 불안한 기분을 잊기 위해 도박에 몰두하는 유형이다.
◇36계 줄행랑 전략, 치료에 도움=똑같이 도박을 해도 사람마다 이유가 다른 만큼 도박을 끊기 위해 접근하는 방식도 달라지게 마련이다.
현재까지 가장 효과적으로 알려진 치료법은 약물치료와 인지행동치료다. 약물치료에 가장 흔히 쓰이는 것은 항갈망제다. 알코올 중독자들에게 사용하면 술을 마시는 욕구가 감소한다고 알려져 있다. 도박 중독자에게는 도파민을 차단, 도박 욕구를 줄여주는 효과가 있다. 인지행동치료란 쉽게 말하면 중독자들이 흔히 갖고 있는 도박에 대한 잘못된 생각과 행동을 바로 잡아주는 치료다.
중독자들은 도박의 욕구 앞에 번번이 당하고 만다. 따라서 의지만으로 이겨내기 어려운 도박 욕구 앞에 자신이 꼼짝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도박 상황을 피하는 것이 좋다. 이른바 ‘36계 줄행랑’ 처방이다.
단도박(www.dandobak.co.kr) 모임을 이용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도박을 끊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자발적인 모임이다. 본인이 어렵다면 가족이라도 먼저 찾아가 선험자들의 조언에 귀를 기울이자.
신 교수는 “도박중독 치료는 단지 도박을 끊는 기법을 익히는 것이 아니라 도박을 하지 않고도 살 수 있는, 새로운 삶에 적응하는 방식을 배우는 것임을 명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기수 의학전문기자 ks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