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신도 신학강좌] 예수는 누구인가

입력 2010-11-21 17:50


(21) 가버나움 길에서



예수님이 자신의 정체를 밝히면서 ‘십자가-부활 사건’을 예고한다. 이 예고가 마가복음에 세 번 나온다. 8장, 9장, 10장. 세 번의 기록에서 쉽게 눈에 띄는 것은 예수의 자기 정체성과 그에 따른 그분의 길이다. 예수는 자신의 소명을 십자가-부활 사건과 연관시킨다. 정체성 곧 자신이 누구냐는 것이 여기에 묶여 있다. 십자가와 부활을 향해 걸어가야 소명을 다하는 게 된다. 이 길은 피할 수 없다.



길쭉하게 생긴 이스라엘 땅의 북쪽 경계 바깥 빌립보 가이사랴에서 예수는 남쪽의 예루살렘을 바라본다. 이제부터 그곳을 향해 걸어야 한다. 예수는 한번 길게 호흡한다. 하늘 아버지의 뜻을 받들어 여기까지 걸어왔지만, 이제부터는 그야말로 조금도 흔들리지 않고 예루살렘으로 걸어야 한다. 해발 800m의 산성 도시로 올라가야 한다. 예루살렘에서 기다리고 있는 것은 십자가다. 정확하게 말하면 십자가와 부활이지만, 부활이 일상의 경험 바깥에 있는 생소한 것이라면 십자가는 이스라엘 사람들의 일상에서 경험된 공포의 현실이었다. 예수가 십자가와 부활을 말씀하는데 제자들에겐 십자가만 들린 것이 이런 까닭이다.

빌립보 가이사랴에서 첫 번째 십자가-부활 예고 바로 뒤, 예수와 제자단은 정면으로 충돌한다. 예수는 제자들을 아주 심하게 꾸짖는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걸어가려는 길을 가로막는 제자들은 지금 대적자일 수밖에 없다. 예수가 던진 질문에 베드로는 정답을 말한다. “주는 그리스도시니이다!” 베드로의 대답은 제자들 모두의 의견이다. 이들의 지식은 형식적으로는 정확했다. 그러나 내용적으로 문제가 있었다. 그러니까, ‘그리스도’란 말의 개념에서 예수와 제자들 사이에 큰 차이가 있었다. 건널 수 없는 큰 간격! 제자들이 생각한 그리스도는 승리와 성공의 그리스도이며 영광과 위엄의 그리스도였다. 그러나 그들의 그리스도 개념 속에 낮아짐과 겸손과 섬김과 고난은 없었다. 예수가 그리스도로서 지금 걸어가는 마지막 여정에서 너무나 분명해지는 것은 고난의 그리스도다. 결국엔 승리와 영광이겠지만, 그 전에 고난을 거쳐야 할 것이었다.

두 번째 십자가-부활 예고는 더 남쪽으로 내려온 곳에서다. 갈릴리, 예수가 3년 동안 주로 사역했던 지역이다. 그 안의 가버나움은 예수의 활동에서 중심 마을이다. 예수는 또 십자가와 부활을 얘기한다. 그런데 조금 후 제자들은 서로 다툰다. 이유는 누가 크냐는 것이었다. “가버나움에 이르러 집에 계실 때에 제자들에게 물으시되 너희가 길에서 서로 토론한 것이 무엇이냐 하시니 그들이 잠잠하니 이는 길에서 서로 누가 크냐 하고 쟁론하였음이라”(막 9:38∼39). 예수의 길과 제자들의 길이 다르다는 것이 점점 더 분명해진다. 예수는 계속 십자가 쪽으로 걸어가고 있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낮아짐과 섬김의 자리로 말이다. 반면 제자들은 계속 힘과 권력 쪽으로 내달리고 있다. 서로 싸우기까지 하면서 말이다.

그러고 보니 예수는 막판에 가서는 그야말로 혼자 길을 걸으신다. 신앙의 리더 집단에게서 따돌림 받고, 가족과 친족에게서 버림 받고, 마지막엔 제자들과도 갈린다. 예수는 오로지 하늘 아버지의 뜻을 부둥켜안고 걸어간다. 마가복음을 붙들고 생각하는 시간이 더 많아졌다. 어느 날은 프랑크푸르트의 바울교회 마당에서 두어 시간 앉아 있었다. 가을이 깊어가는 날이었다.

지형은 목사<성락성결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