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형의 ‘문화재 속으로’] (43) 베트남 마지막 황실의 보물들
입력 2010-11-21 17:22
베트남하면 전쟁을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을 겁니다. 월남과 월맹이 맞서 싸운 베트남전쟁(1960∼75)에 참전한 한국군이 숱한 목숨을 잃었기에 우리에게는 쉽게 잊지 못할 아픈 상처를 남겼지요. 한국과 마찬가지로 민족상잔의 비극적인 현대사를 거친 베트남에도 찬란했던 시절이 있었답니다. 1802년 베트남을 통합한 응우옌 왕조(Nguyen Dynasty·阮王朝)랍니다.
베트남 최초의 왕조이자 마지막 봉건왕조인 응우옌 왕조의 창건자는 응우옌 푹아인으로 여왕조(黎王朝)를 멸망시킨 떠이선당(西山黨)의 내분을 틈타 전국을 통일하고 황제가 됐습니다. 중부지역인 후에에 새로운 왕도를 건설한 응우옌은 국호를 베트남(越南)이라 정하고 인도네시아계 참족이 세운 참파왕국이 있던 남부까지 점령해 역사상 가장 큰 영토를 확장했지요.
왕조의 최선정기인 제2대 성조 명명제(1820∼1841) 때에는 국호를 베트남에서 다이남(大南)으로 바꾸고 중국 청나라와 대등한 황제국임을 자부할 정도로 막강한 국력을 자랑했답니다. 그러나 19세기 중반 이후 제국주의의 침략으로 왕조의 운명도 점차 몰락의 길을 걷다 1945년 권력의 상징인 황금보검을 베트남독립동맹회(월맹)에 넘겨주면서 대단원의 막을 내렸습니다.
제13대 바오다이제(帝)까지 143년 동안 유지된 응우옌 왕조는 화려했던 시절만큼이나 국보급 유물들도 많이 남겼답니다. 19세기 황태자 보좌(太子寶座)와 용포(龍袍), 용문양이 새겨진 신발(子靴) 등은 응우옌 황실의 위엄과 찬란한 문화를 드러내는 문화재입니다. 제12대 카이딤황제 시절 만들어진 산수문 항아리(花甁), 19세기 분재형 장식(金枝玉葉)도 아름답기 그지없구요.
1915년 권좌 모양의 받침대를 세워 만든 병풍에는 ‘하청명세(河淸名世)’라는 글씨가 적혀 있습니다. “황하가 100년 만에 맑아지듯(백년하청) 500년 만에 세상을 밝히는 훌륭한 임금이 되어라”라는 뜻을 담았다고 합니다. 이 병풍은 지방의 한 수령이 황제에게 헌상한 것으로 응우옌 왕조 시절 병풍의 의미와 가치, 제작 기술 등을 살펴볼 수 있는 귀중한 유물이랍니다.
응우옌 황실의 유물들이 최근 한국에 왔습니다. 국립고궁박물관에서 내년 2월 6일까지 여는 ‘베트남 마지막 황실의 보물’ 전에는 베트남 후에궁정박물관이 소장한 81건 165점을 선보이지요. 응우옌 왕조의 역사와 한·중·일 동아시아 국가에 공통되는 유교 문화, 그리고 황제 및 황후의 예복을 비롯해 화려한 황실의 생활문화를 보여주는 각종 유물들이 볼 만합니다.
유물 외에도 1993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후에 황성의 오문(午門)과 태화전, 황릉, 궁중음악 공연 등이 3D 입체 영상물과 사진 등으로 소개된답니다. 고궁박물관 전시가 끝난 뒤에는 국립경주박물관으로 옮겨 내년 2월 28일부터 5월 15일까지 계속된다는군요. 번영과 몰락을 오간 응우옌 황실 유물을 둘러보면서 영원한 권좌는 없다는 사실을 새삼 떠올리게 됩니다.
문화과학부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