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스파일] 비전형 우울증
입력 2010-11-21 17:20
친구들을 만나서 신나게 놀고 귀가하기도 하며, 제 때 식사도 충분히 하고 잠도 잘 자는 모습을 보이면서 ‘우울하다’고 호소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래서 가족 등 주위 사람들로부터 “우울하다는 사람이 다른 사람들과 잘 어울리고, 잠도 잘 자고, 밥도 잘 먹느냐?”는 핀잔을 듣기 일쑤다. 본인은 우울하다는데 다른 사람들은 그 상태를 인정하기 어렵다는 태도다.
그런데 우울증 가운데 정말로 이런 유형이 있다. 평소 잘 놀고, 잘 먹고, 잘 자기도 하기 때문에 우울증에 빠졌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을 뿐이다. 전형적인 우울증과 다른 모습을 보인다는 이유로 붙여진, 소위 비전형(非典型) 우울증이 바로 그것이다.
흔히 봄은 ‘여자의 계절’이고, 가을은 ‘남자의 계절’이라고 한다. 아마도 여자는 봄을 잘 타고 남자는 가을을 많이 탄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나온 말일 것이다. 이렇듯 날씨는 사람의 마음을 들뜨게도 하고 가라앉게도 하지만, 보통 이러한 기분의 변화는 우리들의 일상생활에 큰 영향을 주지 않는다.
하지만 병적인 기분의 변화, 즉 우울증에 빠지면 얘기가 달라진다.
우리가 보통 알고 있는 정신과 진료 영역에서 우울증의 모습, 즉 전형적인 우울증은 불면, 체중감소, 우울감, 불안 등을 동반한다. 우울한 사람은 슬프고 울적하며 비관적이고 예민하며, 즐거워야 할 때에도 즐거움을 못 느낀다. 그런가 하면 식욕이 감소하여 잘 먹지 못해 체중이 감소하고, 잠이 들기 어렵거나 잠이 들더라도 중간에 자주 깨어 뒤척이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우울증의 또 다른 모습인 ‘비전형 우울증’의 경우엔 이와 사뭇 다른 증상을 보인다. 예를 들어 자신이 좋아하던 일이나 원하던 일, 하고 싶은 일이 생기면 우울한 기분과 무기력이 줄어들거나 사라지고, 일시적으로 활기차게 행동한다. 이른바 ‘기분 반응성’이란 상태다.
기분 반응성 상태란 앞서 예로 든 것처럼 억제하기 힘들 정도로 폭식을 하고, 잠을 평소보다 많이 자는 등 기분의 변화에 따라 자기도 모르게 행동하는 경우를 말한다.
비전형 우울증 환자들이 대부분 전형적인 우울증 환자들과 정반대의 모습을 보이는 이유다. 그래서 비전형 우울증을 가진 사람들의 경우 본인은 물론 가족들조차 그러한 행동이 우울증으로 인한 이상 증상인지 더욱 모르게 된다.
비전형 우울증은 비교적 젊은 나이에 발병하기 쉽다는 점에서 특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우울증의 모습이 아닌 비전형 우울증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할 때다.
김 경 란(세브란스병원 정신과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