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후식 목사 별세, “친일파 분류 억울함 씻어주자”… 통합 추모예배서 결의

입력 2010-11-19 17:37


“잘못 알려진 것이 있다면 아직 기회가 있을 때 바로잡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18일 오전 서울 연지동 한국교회100주년기념관에서는 대한예수교장로회(예장) 통합 총회 주최로 고 신후식 목사 추모예배가 열렸다. 이 자리에서는 때 아닌 ‘친일인명사전’의 정확성 논란이 일었다. 바로 신 목사가 지난해 11월 민족문제연구소가 편찬한 친일인명사전 개신교 부문에 등재돼 있기 때문이다.

신 목사는 1905년 경상북도 청송 출생으로 대구 계명대 설립자 중 한 명이고, 학교법인 계성학원 이사를 지냈으며 예장 통합 55회(1970년) 총회장을 역임했다. 79년 미국으로 건너가 버지니아장로교회, 산호세 서부장로교회 등을 담임하다 지난 11일 필라델피아 자택에서 향년 106세로 별세했다.

이날 논란의 촉발은 림인식 노량진교회 원로목사의 설교 내용이었다. 대구영락교회 시무 시절 신 목사를 처음 만나 평생 교류했다는 림 목사는 ‘요한 사도의 발자취’라는 제목의 설교에서 신 목사의 일생 중 항일독립운동 부분을 강조했다. 19년 광주학생만세사건에 가담했다가 20년까지 평양형무소에 수감됐던 내용이나 일제 말기인 44년 국제간첩 용의자로 일본 헌병에 체포, 부산형무소에 수감됐던 부분이다.

특히 림 목사는 “부산형무소 수감 시절 신 목사는 손톱 밑을 바늘로 찔리는 극한 고문을 받았다”고 증언했다. 림 목사는 “어떤 행적으로 친일 인사로 등재됐는지는 잘 모르지만 내가 아는 신후식 목사는 분명 친일 인사는 아니었다”고 말했다.

이와 같은 설명을 들은 예배 참석자들은 “신 목사가 친일 인사였다면 일제 말기에 그 같은 고문을 받을 이유가 있었겠는가”라며 의문을 표했다. 예장 통합 총회 서기 우영수 목사는 “더 늦기 전에, 역사적 증언이 가능할 때 민족문제연구소 측에 이의를 제기하는 방안을 연구해 보겠다”고 말했다.

친일인명사전에는 개신교인 51명이 올라 있다. 민족문제연구소는 ‘일제의 종교 통제방침에 협력해 교회 변질을 주도하고 교리를 왜곡시킨 자’ ‘변질된 혁신교단, 통폐합된 일본기독교조선교단, 교파 단위의 정동연맹과 총독연맹, 비행기헌납기성회 등 친일단체 간부로 활동한 자’ ‘기독교신문 등 친일 성향의 기독교 신문 잡지 발행인과 주필, 주간을 역임한 자’ ‘기고와 광고, 강연 등으로 식민통치와 침략전쟁을 반복적으로 미화 선동한 자’를 명단에 포함시켰다고 설명한 바 있다.

그러나 성결교 초대 총회장 이명직 목사, 한신대(구 조선신학교) 설립에 기여한 송창근 목사,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의 전신인 한국기독교연합회 초대 회장인 김관식 목사 등에 대해서는 적절성 논란이 일기도 했다.

황세원 기자 hwsw@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