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이 그냥 두자니 불안하고… 3,4세 학습용 게임부터 ‘규칙’ 알게 해야
입력 2010-11-20 00:51
“할머니, 컴퓨터로 인해 엄마와 싸우다가 흥분하는 바람에 엄마에게 용서받을 수 없는 잘못을 저질렀습니다….”
최근 ‘인터넷 게임을 하지 말라’고 나무라는 엄마를 목졸라 숨지게 한 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이모(15)군이 남긴 메모다. 인터넷게임 때문에 한 가정이 무너졌다. 전문가들은 예견된 사고였다고 입을 모은다. 한국청소년상담원 오혜영 부장은 “살상용 무기가 등장하는 폭력적 게임에 중독되면 충동성 공격성을 조절하기 어렵다”면서 “감수성은 예민하고 자기조절능력은 떨어지는 청소년들은 더욱 그렇다”고 말했다.
초등 3·5학년 형제를 키우고 있는 김수정(42·서울 불광동)씨는 “뉴스를 보면서 ‘게임 그만하라’고 야단 칠 때 노려보던 아이의 눈빛이 떠올라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면서 “컴퓨터에 코 박고 있는 아이들을 야단칠 수도 없고, 그냥 놔둘 수도 없고 내가 돌아버릴 지경”이라고 털어놓는다. 김씨만이 아닐 것이다. 게임에 빠진 자녀를 둔 부모들은 물론 어린 자녀를 키우는 부모들도 온라인게임에 대한 경계심이 부쩍 커지면서 어떻게 해야 할지 걱정들이 많아졌다.
◇우리 아이는 어느 정도일까=인터넷 게임도 치료가 필요한 중독 증상이라는 것이 알려지면서 부모들은 “우리 아이도?”라는 걱정을 하게 된다. 오 부장은 “자녀가 지나치게 게임에 몰두한다고 여겨지면 자녀의 상태를 점검해보는 것이 부모가 할 첫 번째 일”이라고 말했다. 자녀가 직접 게임 중독척도조사를 받는 것이 가장 정확하지만 하지 않으려고 한다면 부모가 대신 할 수도 있다(그래픽 참조). 인터넷 중독이 의심된다면 국번 없이 1388로 전화하면 가까운 청소년상담지원센터로 연결돼 상담할 수 있다.
◇“게임 그만두고 공부나 해”는 금물=중독 수준이 아니라면 부모의 지도로도 개선이 가능하다. 그렇지만 이군의 경우에서도 봤듯이 ‘무조건 하지 말라’고 다그쳤다가는 오히려 엇나갈 가능성이 더욱 크다. 인터넷중독예방상담센터 이은실 선임연구원은 “게임을 모르면 또래집단에서 왕따를 당하게 되므로 무조건 하지 말라는 것은 통하지 않는다”면서 “자녀가 좋아하는 게임에 대해 알아보는 것부터 시작하라”고 당부했다.
게임에 대해 얘기할 때는 자녀의 영역을 침해하는 것이 아니라 관심을 갖는다고 느낄 수 있도록 접근해야 효과를 거둘 수 있다. 자녀가 즐기는 게임을 부모가 직접 해보고 그 게임에 대해 토론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이 선임연구원은 “꾸준한 대화를 통해 그 원인을 알아냈다면 이를 해결해주는 것이 급선무”라고 강조했다.
◇세살버릇 여든까지 간다=요즘은 서너 살짜리들도 컴퓨터 게임을 한다. 부모들이 자녀에게 한글 영어 숫자 등을 가르치기 위해 독려하기까지 한다.
오 부장은 “6세 이하는 학습용 게임이라도 매일 하는 것은 위험하므로 2∼3일에 한번 정도, 한번에 1시간이 절대 넘지 않도록 규칙을 정해 지도하고, 컴퓨터 게임의 문제점을 얘기해주라”고 당부한다. 유아기는 부모의 말을 잘 믿고 따른다. 이때 게임을 많이 하면 머리도 나빠지고, 눈도 아프다는 것을 얘기해 게임이 재미는 있지만 좋지 않은 점이 있다는 인식을 심어주는 것이 중요하다. 실제로 게임을 많이 하면 판단력과 충동조절을 담당하는 전전두엽(앞쪽 뇌)의 기능이 약해진다는 연구결과가 나와 있다.
게임과 관련된 규칙을 정해 실천하는 것은 자녀의 인터넷 게임 중독을 예방하는 지름길이다. 아이건강국민연대가 올해 5∼11월 초등 5학년 500명을 대상으로 게임사용에 대한 설문조사를 한 결과 절반 이상인 50.73%가 ‘인터넷 게임 사용에 대한 가정내 규칙이 없다’고 답했다. 자녀와 의논해 이용규칙을 정한 뒤 자녀에게 인터넷 게임 시간을 기록하도록 한다. 가계부를 쓰면 낭비를 예방하는 것과 같은 차원이다. 물론 부모가 관심을 갖고 지켜봐야 한다.
◇사회가 나서야 한다=인터넷 게임 중독에 빠진 자녀를 부모가 돌보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아이건강국민연대 김민선 사무국장은 “청소년 인터넷 게임 중독은 부모와 자녀, 개인 책임으로 미뤄둘 수 없는 사태에 이르렀다”면서 “당장 게임의 심야 시간 접속을 제한하고, 아이템 거래를 금지하고 결재수단도 신용카드로 제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청소년의 수면권 보장을 위해 19세 미만의 청소년은 밤 12시부터 새벽 6시까지 모든 온라인 게임의 접속을 제한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한 청소년보호법 개정안을 2008년 보건복지가족부(현재는 여성가족부 업무)가 마련했지만 문화체육관광부의 반대로 통과가 안 되고 있는 실정이다.
김혜림 선임기자 ms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