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특한 색깔의 ‘베리드’… 95분간 등장인물 달랑 한 명, 장소도 비좁은 관 속 한 곳

입력 2010-11-19 17:41


납치범이 등장하지 않는 납치극, 구조 작전의 영웅이 등장하지 않는 구조 영화. 단 한 명의 등장인물과 단 한 곳의 공간만 등장하는 지극히 이색적인 영화 ‘베리드(buried)’ 이야기다.

갑작스럽게 총탄세례를 받았는데 눈을 떠보니 사방이 막힌 관 속이라면? 이라크에서 트럭을 몰고 가다 테러를 당한 운전기사 ‘폴 콘로이’(라이언 레이놀즈)가 갇힌 관 속에는 누구의 것인지 알 수 없는 휴대전화 하나와 라이터, 전등이 있다. 관 속의 산소는 시시각각 줄어들고, 비좁은 관은 몸을 한번 뒤집는 것조차 허용하지 않는다. 휴대전화 배터리도 조금씩 방전돼 가는 상황에서 폴은 미친 듯이 이곳저곳에 전화를 건다. 집으로, 정부로, 회사로, 이 부서에서 저 부서로…. 레이놀즈의 처절한 연기와 상영시간 95분 내내 지상으로 한 번도 올라가지 않는 카메라 덕택에 관객들은 폴의 고통과 절망을 고스란히 자신의 것으로 체험한다.

소름끼치도록 완전한 형태로 드러나는 경직된 관료주의와 기업들의 무한이기주의, 더불어 정의롭지 못했던 전쟁의 상흔까지.

영화는 구구절절한 설명 없이도 관 속의 폴을 통해 이 모든 것을 뼛속이 저리도록 느끼게끔 한다. 2004년 김선일씨 피살사건과 2007년의 분당샘물교회 신도 납치사건을 지켜본 한국인들이라면 대부분 ‘저런 상황이 온다면 누가 나를 구할 것인가’라는 생각을 하게 될 것 같다. 납치범은 몸값을 요구하는데 정부는 협상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고수하고, 시시각각 산소는 고갈되는 상황에서 들리는 말은 ‘기다려보라’는 것뿐. “한 명이라도 구해낸 사람이 있긴 한가”라는 폴의 물음은, 실체를 알 수 없는 권력을 향해 힘없는 개인이 던지는 마지막 절규다.

로드리고 코르테스 감독은 레이놀즈를 일컬어 “그냥 배우가 아니라 스트라디바리우스 같았다”고 평하기도 했다. 목소리로만 등장하는 FBI 인질 전담반 반장(로버트 패터슨)과 회사 간부 앨런 대번포트(스티븐 토볼로스키)의 지적이고도 건조한 음성 역시 빼놓을 수 없는 영화의 한 축이다. 할리우드 영화는 제작비가 평균 6000만 달러인데 이 영화는 20분의 1 수준인 300만 달러만 들었다. 15세가. 다음 달 2일 개봉.

양진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