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행숙 시집 ‘타인의 의미’… 감각과 느낌 엉뚱한 재발견

입력 2010-11-19 17:37


김행숙(40·사진) 시인의 세 번째 시집 ‘타인의 의미’(민음사)는 감각과 느낌에 대한 새로운 보고서다. 예컨대 시 ‘목의 위치’는 목이라는 형태 때문에 야기되는 기이하고 생경스런 감각을 재발견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소용없어요, 목의 길이를 조절해 봤자, 외투 속으로 목을 없애 봤자, 그래도 춥고, 그래도 커다란 덩치를 숨길 수 없지 않습니까.//그래도 목을 움직여서 나는 이루고자 하는 바가 있지 않습니까. 다리를 움직여서 당신을 떠나듯이. 다리를 움직여서 당신을 또 한 번 찾았듯이.”(‘목의 위치’ 일부)

목의 길이를 조절할 수 없는 몸의 불가능성은 그대로 사랑의 불가능성과 겹쳐진다. 목을 움츠릴 수는 있지만 줄어들게 하거나 늘리는 일은 불가능하다. 일시적으로 목을 외투 깃에 파묻을 수는 있지만 영원히 숨길 수는 없다. 사랑도 그와 같아서 사랑의 길이를 일방적으로 조절할 수 없다. 목의 사건은 사랑의 사건이 되고 이별의 사건이 되기도 한다. 목을 움직이는 일이 함축하는 한계는 몸이 움직여 사랑을 하고 또한 사랑을 떠나가는 사랑의 한계로 이어지는 것이다. 목의 길이를 조절할 수는 없지만 목을 움직일 수 있는 것처럼, 사랑의 운동성도 움직이는 것 이외에는 조절 불가능하다. 이처럼 엉뚱한 감각의 재발견이 놀랍지 않은가. 한편으로 현대시의 위치를 찾아가는 천진한 투정처럼 들리기도 한다.

“볼 수 없는 것이 될 때까지 가까이. 나는 검정입니까? 너는 검정에 매우 가깝습니다./너를 볼 수 없을 때까지 가까이. 파도를 덮는 파도처럼 부서지는 곳에서. 가까운 곳에서 우리는 무슨 사이입니까?/영영 볼 수 없는 연인이 될 때까지/교차하였습니다. 그곳에서 침묵을 이루는 두 개의 입술처럼. 곧 벌어질 시간의 아가리처럼”(‘포옹’ 전문)

시인은 가까이 갈수록 상대방이 보이지 않게 되는 것을 ‘포옹’이라고 말한다. ‘가까이’라는 부사는 시 속에서 ‘좀더 가까이’, ‘아주 가까이’, ‘틈새 없이 완전히 붙어버릴 때까지 가까이’로 점점 분화한다. 그러나 모든 ‘가까이’는 마지막 연 ‘곧 벌어질 시간의 아가리처럼’에 함몰된다. 가까이 갈수록 떨어지고 말 것이라는 위태로움이 ‘포옹’에는 전제되어 있다. 결코 하나가 될 수 없는 포옹의 본질과 한계를 알면서도 포옹하고 사랑할 수밖에 없는 게 존재의 비밀인 것이다. 사물 혹은 존재에 깃든 한계와 불가능성이야말로 감각의 껍질이자 내용물인 것이다. 김행숙의 시 세계가 2000년대 한국 시단의 뉴 웨이브로 평가받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정철훈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