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작가 피어시그 ‘선(禪)과 모터사이클 관리술’ 번역 출간

입력 2010-11-19 17:37


미국 작가 로버트 메이너드 피어시그(82·사진)의 자전 소설이자 불후의 명작이라는 평가를 받아온 ‘선(禪)과 모터사이클 관리술’(문학과지성사)이 서울대 영문과 장경렬 교수의 6년에 걸친 번역 끝에 출간되었다. ‘가치에 대한 탐구’라는 철학적 부제를 달고 있는 이 소설은 1974년 미국에서 출간된 이래 전 세계 23개 언어로 번역되어 지금까지 600만권이 판매되었을 정도로 유명한 대작이다.



소설은 과거 정신병력을 가진 아버지(화자)와 그의 아들 크리스가 미네소타에서 캘리포니아에 당도하기까지 17일간에 걸친 모터사이클 여행기를 축으로 하고 있지만 그 내용은 과학과 종교, 인문주의를 망라하면서 ‘과연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일종의 철학적 탐구서이기도 하다.

이 질문의 답을 얻기 위해 부자가 한 모터사이클의 앞뒤 좌석에 앉아 엔진의 힘이 불러일으키는 거센 바람과 먼지를 뚫고 내달리는 여정을 상상해 보라. 하지만 엔진 소음과 바람 소리로 인해 그리고 헬멧을 써야하는 관계로 부자는 여행 도중 거의 대화를 나누지 못한다. 말하자면 이들은 외부 세계와 단절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서로와도 단절되어 있다. 각자 이런저런 생각에 잠겨 여행을 계속할 뿐이다.

이러한 상황은 아들 크리스가 아버지에게 “아빠, 아빠는 항상 무얼 그리 생각하세요?”(402쪽)라고 물을 정도로 주인공인 아버지는 자신의 과거를 향한 시간여행에 몰입한다. 아버지는 자신이 재구성해나가는 ‘과거의 자신’을 ‘파이드로스’라고 부르는데, 고대 희랍 시대의 소피스트 가운데 한 사람을 떠올리게 하는 이 이름이 의미하는 바는 소설의 핵심 주제인 ‘잃어버린 가치에 대한 탐구’를 곧장 관통한다. “다시 모터사이클을 타고 달리는 동안, 나는 문득 크리스가 또 하나의 파이드로스라는 깨달음에 이른다. 그는 예전의 파이드로스처럼 생각하고, 예전의 파이드로스처럼 행동하는 또 하나의 파이드로스, 단지 막연하게 의식될 뿐 정체를 모르는 힘에 의해 내몰린 채 말썽거리를 찾아 헤매는 또 하나의 파이드로스인 것이다.”(717쪽)

실제로 IQ 검사에서 170을 기록할 정도로 영민했던 작가는 15세 때 대학에 입학한 천재였다. 그러나 학문적 탐구에 회의를 느껴 군에 입대했고 1950년대 미 군정하의 한국에서 근무했던 경험은 이 소설을 쓰게 된 직접적인 동기로 작용한다. “한국에서 보았던 성벽은…아름다웠지만 이는 노련한 지적 기획 때문도 아니었고 작업에 대한 과학적 관리 때문도 아니었으며 그 성벽을 ‘멋들어지게’ 하기 위해 과외로 지출한 경비 때문도 아니었다. 그들은 자기 초월의 상태에서 그 일을 제대로 하도록 자신들을 유도하는 방식을 소유하고 있었던 것이다.”(516쪽)

요컨대, 과거를 향한 시간 여행을 통해 소설의 주인공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은 과거의 자신인 파이드로스와 하나가 되고 또 아들과 하나가 되는 극적인 순간이다.

정철훈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