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對美 FTA 말장난하나
입력 2010-11-18 23:23
“협정문의 점 하나도 고칠 수 없다.”→“재협상이 아니라 실무협의다.”→“전면 재협상이 아니라 제한적 협상이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둘러싼 정부의 말바꾸기가 도를 넘었다는 지적이다. 또한 정부가 사실상 재협상을 공식화하면서 우려했던 대로 한·유럽연합(EU) FTA의 비준에도 부정적 영향이 가시화되고 있다.
최석영 외교통상부 FTA 교섭대표는 18일 언론브리핑에서 “한·미 간 통상장관회의에서 미국 측이 제시한 내용을 다루기 위해선 주고받기식 협상이 불가피한 상황”이라며 “이는 전면 재협상이 아니라 극히 제한된 부분만을 다루는 협상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사실상 재협상을 공식화한 셈이다.
최 대표는 “처음부터 재협상이 가능하다고 했다면 국내 논란뿐 아니라 미국도 쉽게 생각했을 것”이라며 “그런 (재협상은 없다) 발언을 한 것은 전략상 이유가 있었다”고 말했다. 재협상 논란을 피하기 위해 우리 측 요구안을 따로 마련하지 않았다는 애초의 설명과 달라진 것이다.
향후 재협상에서 우리나라가 미국 측에 요구할 협상안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답변을 피했다. 다만 ‘이익의 균형’ 확보에 최대한 중점을 둘 것이라고만 했다. 이에 우리나라가 FTA 체결 당시 불이익이라고 했던 농산물이나 의약품 분야에서 요구안을 만들 것으로 보인다.
이렇듯 한·미 FTA 추가협상이 갈팡질팡하자 많은 분야에서 한·미 FTA의 기준을 준용했던 한·EU FTA도 영향을 받기 시작했다. 이날 외교부에 따르면 유럽의회는 오는 24일 본회의에서 처리할 예정이던 한·EU FTA 세이프가드(긴급수입제한조치) 이행법안의 표결을 무기한 연기했다.
세이프가드 이행법안은 양국이 인정한 세이프가드를 어떠한 조건에 따라 어떠한 절차를 밟아 발동할 것인지 등의 세부사항을 명시하는 법안으로 유럽의회는 이미 두 차례 본회의 표결을 연기해 온 상태다.
외교부 관계자는 “이번에 또 연기된 것은 유럽의회 상임위원회 통과 당시 수정·추가됐던 법안을 놓고 이사회와 유럽의회 간 이견이 주 원인”이라면서도 “한·미 FTA 상황도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김아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