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춘추-박정태] 검찰의 재수사 잣대는 뭔가

입력 2010-11-18 17:43


동에 번쩍 서에 번쩍 신출귀몰하는 검(檢)의 칼날이 매섭다.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이후 은인자중한 지 1년 5개월여. 대검찰청 중앙수사부를 비롯해 서울중앙·북부·서부·남부, 의정부지검이 일제히 칼을 빼들었다. 이처럼 동시다발로 정치권 등을 겨냥해 수사에 나선 것은 전례가 거의 없는 일이다.

지난주 국가 대사인 서울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로 잠시 숨고르기를 했던 검찰이 이제 본격적인 사정(司正)에 들어갔다. 전국청원경찰친목협의회의 입법 로비 후원금 의혹을 파헤치기 위해 여의도를 정조준한 게 신호탄이다. 이달 초 여야 국회의원 11명의 후원회 사무실 압수수색에 이어 소환 불응자에 대한 체포영장 집행 등 강제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민주당이 18일 수사에 응하기로 했다지만 어찌 됐든 검찰과 정치권의 전면전이다.

새 단서 없다며 일축하더니

현재 여론은 검찰에 유리하다. 비리 척결이라는 대의명분 때문이다. 그러나 검찰에도 아킬레스건이 있다. 국민의 이목이 쏠린 ‘그랜저 검사’와 ‘청와대 대포폰’ 의혹 사건이 치명적 약점이다. 제 식구 봐주기, 권력 눈치 보기의 전형이다. 정치권과의 싸움에서 역성들던 국민도 검찰의 또 다른 속내를 들여다보면 실망하게 된다. 자칫 여론이 순식간에 뒤바뀔 수 있다. 그래서 마지못해 결단을 내린 게 ‘그랜저 검사’ 재수사다.

부장검사가 후배 검사에게 건설업자의 사건을 청탁한 대가로 그랜저 승용차 구입비를 받았다는 이 의혹 사건은 지난 7월 무혐의 처분됐다. 단순 차용으로 대가 관계가 없다는 게 이유. 그간 정치권의 재수사 요구도 일축했다. 검찰은 재수사 전제 조건으로 줄곧 ‘새로운 단서’를 강조해 왔다. 그런데 단서가 나오지 않았음에도 ‘수사 미진’을 내세우며 재수사를 결정했다. 자신의 환부를 도려내야만 ‘스폰서 검사’ 파문으로 실추된 위상을 회복하고 정치권에 강공 드라이브를 걸 수 있다는 계산이다.

검찰은 ‘그랜저 검사’를 내준 대신 민간인 불법 사찰 및 대포폰 사건은 사수하려 할 가능성이 높다. 언제 어디서 폭발할지 모르는 시한폭탄이기 때문이다. 청와대 행정관이 민간인 사찰 증거를 인멸하려는 국무총리실 산하 공직윤리지원관실 직원에게 왜 대포폰을 제공했는지, 사찰 배후가 누구인지, 그 어느 것 하나 드러난 게 없다. ‘영포(영일·포항)라인’ 등 권부 핵심이 연루됐을 것이란 짐작만 할 뿐이다.

총리실 수사 의뢰를 받고 나서 나흘 뒤에 압수수색을 했지만 그 상황에서 최선이었다는 수사팀 강변도 황당하다. ‘그랜저 검사’를 재수사하는 특임검사가 수사팀을 꾸린 17일 곧바로 그랜저 제공 업자의 자택과 사무실을 전격 압수수색한 것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지 묻고 싶다. 사찰을 주도한 이인규 전 지원관이 재판에서 당시 이강덕 청와대 공직기강팀장에게 사찰 내용을 보고했다는 진술도 검찰은 무시한다. ‘BH(청와대) 하명’ 메모와 청와대 보고 파일은 더 언급해본들 무엇하랴.

‘대포폰’은 불량 수사 자체

이렇게 냄새가 진동하는데도 실체를 밝히지 못했으면 이는 수사 미진이 아니라 불량 수사다. 김준규 검찰총장마저 지난달 국정감사에서 수사 실패를 자인했다. 당연히 재수사로 이어지는 게 상식이다. 그게 공정 사회다. 오죽하면 검찰 출신의 홍준표 한나라당 최고위원이 “검사들이 눈치를 보기 시작하니 엉망이 됐다”고 일갈하겠는가.

검찰이 재수사 불가를 고집하는 사이 의혹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청와대가 직접 주요 인사들을 사찰했다는 추가 폭로까지 야당에서 나왔다. 몸통은 놔두고 꼬리만 건드린 사실이 역력함에도 검찰은 눈을 질끈 감고 있다. 살아 있는 권력에 한없이 약한 검찰의 태생적 한계다. 읍참마속(泣斬馬謖)은 하되 역린(逆鱗)은 건드리지 않겠다는 심산(心算)으로 해석할 수밖에.

박정태논설위원 jtpar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