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건축가를 대접해야 문화가 산다
입력 2010-11-18 17:36
한 나라를 온전히 알기 위해서는 건축을 이해하라는 말이 있다. 건축은 그 나라 구성원들이 꾸리는 생활의 축소판이며, 당대의 살아있는 기억이자 생생한 언어다. 건축은 음악 무용 미술 연극 문학 영화와 더불어 예술의 한 장르일 뿐만 아니라 인간 삶의 총체적인 부분에 기여한다는 측면에서 종합예술로 불리기도 한다.
그런데도 건축을 홀대한 시간이 너무 길었다. 건축가를 일개 장인으로 취급한 왕조시대의 전통은 근대국가 이후에도 계속돼 건축을 기능의 수준으로 끌어내리는 데 한몫했다. 건축가를 당당히 예술가의 반열에 올려놓으면서 사회발전의 견인차로 삼은 서구와 대조적이다. 유서 깊은 건물 화신백화점을 헐어버리는 우(愚)도 건축가를 존중하지 않는 풍토에서 나왔다고 본다.
그제 열린 새건축가협의회의 기자회견은 건축에 대한 그간의 잘못된 인식에 일침을 가하는 자리였다. 이들은 ‘건축가의 자리가 없는 사회를 통탄한다’라는 성명서에서 건축물을 문화예술작품이 아닌 건물로만 보고, 건축가를 용역업자로 취급하는 현실에 이의를 제기했다. 공공건물 준공식장에서 건축가가 무시되는 것을 예로 들면서 공공건축물에 설계자의 실명이 표시될 수 있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이 꼽은 예를 보면 낯이 뜨거워진다. 지난달 개관한 안중근기념관 개관식에 건물을 설계한 김선현 임영환 건축가는 없었고, 국립중앙박물관 개관리셉션에 김정철 박승홍 건축가는 초대받지 못했다. 서울 월드컵경기장 준공식 때 대통령이 감사표시를 한 사람은 시장과 축구협회장, 시공사 대표였고 건축가 류춘수는 호명되지 않았다.
건축물은 소수의 애호가들이 즐기는 회화나 문학, 공연과는 차원이 다른 사회성을 지니고 있다. 인간의 삶과 환경의 변화에 적극 참여한다. 이것이 건축가가 존중받아야 할 이유다. 건축가를 창작자로서 존중해야 건축의 노벨상인 프리츠커상 수상자가 나온다. 우리도 일본의 안도 다다오, 반 시게루같은 세계적 건축가를 배출할 때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