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증폭사회’ 펴낸 심리학자 김태형씨 “한국인 우울증은 사회 불안에 따른 부작용”
입력 2010-11-18 17:26
2010 서울 G20 정상회의 개최에 즈음해 외신들은 연일 우리 경제에 대해 찬사를 보냈다. 외신들은 전쟁의 폐허에서 기적을 이뤘다며 한국을 치켜세웠지만 한국인의 삶은 그리 행복하지 않다. 지난 8월 한국심리학회가 한 일간지와 공동으로 실시한 연구에 따르면 한국인 행복지표는 세계 50위권 수준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2009년 자료를 보면 이혼율, 자살률, 비정규직 비율, 산재 사망자, 세부담 증가율 등등 각종 ‘불행지표’에서 한국은 1, 2위를 차지했다. 경제는 호황이라는데, 우리 삶은 왜 이리 팍팍한 걸까.
‘불안증폭사회’(위즈덤하우스)를 펴낸 심리학자 김태형(45)씨는 17일 한국이 지금 역사 이래 최악의 불안과 우울, 무기력과 분노를 경험하고 있으며 이 원인은 바로 우리 사회에 있다고 주장했다.
“주위에 행복하다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되는지 따져보세요. 찾기 힘들죠? 지금 한국인들은 불행의 한복판에 서있습니다. 요즘 부쩍 우울증 환자가 늘었다고들 합니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우울증을 철저히 개인의 문제로만 치부하고 빨리 병원에서 치료 받으라고 권유하죠. 한국인의 우울증은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 불안에 따른 부작용입니다. 원인을 모르니 치료가 제대로 될 리 없죠.”
김씨는 한국인들이 ‘IMF’를 경험한 이후 극도로 불안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무한경쟁을 강조하는 신자유주의의 풍조가 사회전반에 파고들면서 구성원간 심리적 안전망마저 허물어졌기 때문이라고 그는 분석했다.
“요즘 가장 유명한 TV 예능프로그램을 보면 종종 ‘나만 아니면 돼’라고 소리치는 장면이 나오던데요. 물론 우스갯소리라고 하겠지만 수단을 가리지 않고 나만 잘되면 남이 어떻게 되든 상관없다는 식의 말을 떳떳하게 할 수 있는 사회분위기가 형성됐다는 게 문제입니다.”
그는 한국인의 정신병리학적 상태를 ‘죄수의 딜레마’로 설명했다. 두 공범자가 범죄사실을 함께 숨기면 증거불충분으로 낮은 형량을 받을 수 있는데도 상대방의 범죄 사실을 알려주면 형량을 덜어준다는 수사관의 꾐에 빠져 상대방의 죄를 밝힌 뒤 공멸에 이른다는 것이다. 즉 승자독식의 무한경쟁은 사회 구성원들의 마지막 도피처인 가정마저 뒤흔들었고 급기야 개인의 불행을 불러온다는 분석이다.
그는 “예전엔 직장동료끼리, 친구끼리, 가족끼리 함께 고민을 풀었지만 공동체의식은 이미 희박해진 상태”라며 “구성원들이 더 이상 스트레스를 풀지 못하니 정신적으로 일탈하게 되는 양상”이라고 말했다.
김씨는 책에서 한국사회가 가진 문제를 이기심, 고독, 무력감, 의존심, 억압, 자기혐오, 쾌락, 도피, 분노 등 9가지 심리코드로 분류해 설명하고, 인간답게 사는 법에 대한 제언을 담았다. 그는 “무한경쟁의 틀에서 벗어나 공동체를 복원하려는 사회적 의지가 되살아나야만 우리 사회는 공멸을 면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글·사진=김상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