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디자이너 정병규 ‘내가 본 And’… “매가페이퍼의 한 전형을 보았다”
입력 2010-11-18 18:02
◆ 정병규씨는
한국 북디자이너 1호로 여전히 출판 일선에서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정디자인 대표로 경원대 미대에 출강하며, ‘동아시아 책의 교류 2010’ 코디네이터를 맡고 있다. 중앙일보 아트 디렉터를 역임했다.
요즘 신문을 뒤쪽부터 보는 사람이 많아요.” 한 신문사의 고위 간부가 들려준 말이다. 그렇게 신문을 보는 사람이 신문을 앞쪽부터 보는 사람보다 월등히 많다는 말은 아닐 것이다. 신문을 뒤쪽부터 보는 사람이 늘어난다는 말로 들린다. 신문의 구조, 지면의 구성, 기사의 배치 등을 얘기하다가 나온 말이다. 이제 신문은 뒤쪽이 강해져야 한다고도 덧붙였다.
오늘날 신문의 중요한 흐름은 무엇보다 뉴스의 비중이 점점 줄어들고 약해진다는 데 있다. 신문(新聞), 뉴스페이퍼(newspaper)라는 말의 본뜻이 희미해져가고 있는 것이다. 뉴스를 전하는 속보성의 경쟁에서 신문은 텔레비전과 인터넷을 따라 가거나 넘어설 뾰족한 대안이 없다. 뉴스는 이제 신문을 파는 알파요 오메가가 아니다. 신문은 더 이상 뉴스만을 팔지 않는다. 현대 신문의 변화, 현대 신문의 체질개선을 위한 소용돌이의 밑바탕에는 이러한 뉴스와 신문과의 관계 변화가 놓여 있다.
현대 신문 체질개선의 첫 시도는 증면으로부터 시작되었다. 물론 뉴스를 다루는 태도에도 큰 변화가 일어났다. 뉴스는 속도 중심의 속보 경쟁의 대상이 아니라 심층 취재와 해설의 대상이 되었다. 뉴스는 사실 전달의 장에서 해석의 장으로 그 위치가 옮겨졌다. 이러한 신문뉴스의 변화는 지금까지 ‘뜨거운’ 뉴스에 가려져 있던 우리 삶과 문화의 일상적 현실이 새로운 기삿거리로 등장하는 계기가 되었다.
지면 증면과 함께 시작된 비(非)뉴스의 기사화는 신문 기사 내용의 다양성을 촉진시켰으며 신문의 기존 개념과 함께 신문 제작에서도 중요한 패러다임 변화를 불러왔다. 매가페이퍼(magapaper)라는 개념이 서서히 뉴스페이퍼라는 개념을 대신하기 시작한 것이다. 잡지(magazine)와 신문(newspaper)의 결합인 매가페이퍼는 오늘날 신문의 새로운 생존 전략과 존재 이유의 밑바탕을 이루고 있다. 매가페이퍼는 현대 신문의 특징을 한마디로 잘 보여주고 있다. 현대 신문의 개성은 이제 어떤 뉴스를 다루느냐보다는 어떤 비뉴스를 다루느냐로 판가름 난다는 것이 상식화되어 가고 있다.
뉴스페이퍼에서 매가페이퍼로의 전환에서 먼저 주목할 것은 신문 위상의 변화다. 사회의 선두에 서서 호령(?)하던 신문의 위상이 바뀌었다. 정론을 앞세워 고고히 목소리를 외치던 투사형 언론에서 이제는 각론을 말하는 대화적 언론으로 신문의 위상이 바뀌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현실은 신문이 그 스스로의 생존 전략으로서 매가페이퍼로의 변신을 꾀한 결과다.
매가페이퍼화와 함께 위기에 대처하기 위해 현대 신문은 또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다. 그것은 지면의 적극적 시각화다. 신문의 디자인화라고 말할 수 있는 이 새로운 시도는 1980년대 말 영국 가디언지의 디자인 혁신을 시발로 하는 세계 신문의 또 다른 생존 전략이다. “오늘 하루, 지금도 세계 어디에서는 새로운 디자인으로 모습을 바꾼 신문이 탄생하고 있다”는 말은 현대 신문과 디자인과의 관계를 한마디로 말해준다. 때늦은 감이 없지 않은 신문의 디자인에 관한 관심은 오히려 지금까지의 무관심을 보상하기라도 하듯 ‘신문 디자인 시대’라는 말을 낳고 있다.
새로운 모습과 내용으로 선보인 국민일보의 주말섹션 ‘And’가 1년을 맞았다. 지난 1년의 ‘And’ 지면에서 먼저 주목을 끄는 것은 디자인적 형식이 독자의 기대를 충족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이것은 무엇보다도 사진 이미지 표현의 큰 원칙을 지킨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지면을 지배하는 한 장의 큰 사진과 이와 상대적인 작은 사진 사용의 성과이다. 이러한 사진적 표현의 방법은 매가페이퍼가 정착한 이후 신문디자인의 중요한 특징이다.
‘And’ 편집의 특징은 한마디로 절제적 표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절제는 한국 신문 디자인에서 매우 중요하다. 이는 그동안 디자인이라는 이름으로 횡포에 가까운 지면 관리를 해온 우리 신문디자인의 오류에서 ‘And’ 지면을 벗어나게 해줬기 때문이다. 절제된 표현은 디자인의 본질이 커뮤니케이션이라는 가치에 바탕을 두고 있다. 이는 우리 신문들의 디자인 인식 수준, 디자인은 결국 장식이라는 태도를 감안할 때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내용의 틀의 중요성은 디자인의 틀의 중요성을 앞선다. 내용의 틀은 기사의 성격과 내용의 실체 그리고 그 배치 등을 규정한다. 그래서 디자인의 틀은 내용의 틀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And’는 그 출발에서부터 내용의 틀을 적극적으로 표현하는 지면 구성을 하고 있다. 해당 지면의 성격과 내용을 한마디로 알려주는 면제목이 그것이다. 면제목의 적극적 사용 역시 매가페이퍼의 한 특징이랄 수 있다. ‘And’에서 보이는 면제목들은 cover story, story, people, focus, inside, global inside, trend, news, live, issue, in&out 등이다. 이들 면제목의 다양성은 ‘And’ 기사의 다양한 성격과 내용을 한마디로 말해준다. 이 다양성은 무엇보다도 ‘And’의 의욕과 기획의 참신성을 대변하고 있다. ‘And’ 1년을 통해 우리가 만난 기사들의 소재, 그 내용, 기사 스타일에서 매가페이퍼의 한 전형을 볼 수 있다.
그러나 면제목들이 각 지면마다 고정돼 있지 않고 각 주마다 달라진다는 것이 아쉽다. 때문에 독자들은 혼란스러울 수가 있다. 면제목은 각 지면마다 고정돼 있고, 따라서 그것은 반복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주마다 달라지는 면제목과 그 순서는 기사의 내용과 순서가 매주 달라진다는 말이다. 독자들에게 다양한 요리를 주마다 구미에 맞게 제공하려는 의욕은 쉽게 알 수 있으나, 잘 차려진 상 앞에서 자칫 입맛을 잃게 할까 우려가 된다. 내용의 틀이 너무 가변적이기 때문일 것이다. 내용의 틀은 어디에 무엇이 있다는 것에 대해 독자들과 미리 하는 약속이다.
‘And’ 1면의 성격도 한 가지로 고정시키는 것은 어떨까. 지금은 사람 이야기, 이슈 따라잡기, 재미난 읽을거리 등이 섞여 있다. 매일매일 내용이 달라지는 전체 1면과는 달리 ‘And’의 1면은 독자들과의 약속과 기대를 ‘And’ 지면 중에서 가장 중시해야 하는 곳이며, ‘And’의 개성적 성격을 분명히 표현할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And’ 1년의 성과가 또 다른 새로운 기획을 탄생시키고 국민일보의 다른 지면 디자인에도 영향을 주었으면 하는 바람을 덧붙이고 싶다. 이는 ‘And’가 매가페이퍼로서의 전형인 시도를 새로운 기사의 기획과 내용, 절제된 디자인이 돋보이는 지면을 통해 우리에게 보여줬기 때문이다. 많은 현실적 제약이 없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독자의 바람은 맹목적이고 끝이 없는 것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