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d 에디터 노트] “한번 만난 이야기는 돌고돌아 다시 오더군요”

입력 2010-11-18 18:13


지난해 11월 20일이었습니다. 29세 간암 말기 사진작가 이석주씨 이야기, ‘스물아홉, 왜 나일까…’를 프런트로 주말섹션 And가 처음 인쇄됐습니다. 매주 금요일 여러분과 만난 지 꼭 1년입니다. And를 만들면서 한 주의 시작과 끝은 수요일이 됐습니다. 수요일에 기사를 마감하고 목요일에 편집을 마무리합니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수요일(17일) 밤 10시입니다. 옆자리에선 미얀마에 다녀온 이영미 기자가 이번 호 커버스토리를 열심히 다듬고 있습니다. 다 쓰면 곧바로 새로운 한 주가, ‘다음 호엔 뭘 쓰지?’ 하는 고민과 함께 시작될 겁니다.

좌충우돌했습니다. 제호 And는 “이런 뉴스 알고 계시죠? ‘그리고’ 거기에는 이런 이야기도 있습니다”란 뜻에서 붙인 겁니다. 정보의 홍수라지요. 뉴스가 많으면 뉴스에 가려진 이야기도 많으려니 했는데 이슈를 비틀어 보는 눈이 저희에게 아직 부족했나 봅니다. 한 주도 쉽게 넘어가는 법이 없더군요. And팀 취재·편집 기자 여섯이 쩔쩔매가며 1년간 찾아낸 이야기들은 오른쪽 사진과 같은 모습으로 여러분께 배달됐습니다. 지난달 22일자에 실린, 삼성전자 뛰쳐나와 샌드위치 파는 이남곤씨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완벽한 시작은 완벽해질 기회를 잃는 것이다.” 요즘 가끔 떠올리게 됩니다.

뉴스의 힘을 절감한 건 천안함 사건 때였습니다. 모든 이의 관심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인 거대한 뉴스 앞에서 저희가 준비한 이야기들이 너무 작아 보였습니다. 글의 기교나 편집의 기술로는 도저히 넘어설 수 없는 위력에 급히 취재한 기사가 천안함 전역 수병의 회고, ‘천안함서 보는 바다… 저리도 고왔는데’(4월 2일자)입니다. 천안함 수색작업을 돕다가 98금양호가 침몰하면서 숨진 두 인도네시아 선원이 있습니다. 그들의 사연을 찾으러 갔을 때는 난감했습니다. 2년 가까이 한국에 산 두 사람을 아는 이들은 같은 배 선원들뿐이었고, 모두 바다 속에 있었습니다. 그들의 한국생활에 대한 이야기는 ‘한국생활 599일… 흔적이 없다’(4월 22일자)가 됐습니다.

미국 공화당 부통령 후보였던 세라 페일린이 아프리카를 하나의 국가인 줄 알더라는 폭로로 곤욕을 치른 적이 있죠. 한국에 유학 온 케냐 대학생은 “한국 사람들도 ‘식인종 만나봤냐’고 묻곤 한다”더군요(2월 4일자 ‘케냐에선 사자와 사냐고요?’). 마침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월드컵이 열려 아프리카를 여행했습니다. ‘김남중 기자의 아프리카 다이어리’(6월 11일, 18일, 25일, 7월 1일자)는 사자의 땅에서 꿈틀대며 솟아오르는 중산층과 시장경제의 열기와 한국 못지않은 교육열을 담았습니다. 고백컨대, 애초에 구상한 제목은 ‘아프리카를 인터뷰하다’입니다. 아프리카의 석학, 기업인, 예술가들을 만나 아프리카를 물어보려 했는데, 그게 잘 안 돼서 여행작가 빌 브라이슨을 흉내 낸 여행기가 됐습니다.

한번 만난 이야기는 돌고 돌아 다시 찾아오더군요. 이런 식입니다. 팀원들이 하나 둘 스마트폰을 갖게 된 2월 초에 ‘GPS(위성위치확인시스템) 드로잉’을 시도했습니다. 스마트폰을 들고 서울 시내를 이동하면 GPS 기능으로 그 궤적이 온라인 지도에 그림처럼 표시되는 겁니다(2월 12일자 ‘스마트폰, 9×12㎞ 호랑이를 그리다’). 스마트폰 열풍이 일더니 9월에 대학생 박창욱씨가 같은 방법으로 자전거 전국일주를 하며 한국 지도에 GPS 그림을 그렸습니다(10월 1일자 ‘2155㎞ 꿈을 그리다’). 호랑이해를 맞아 새해 인사 삼아 그렸던 저희 호랑이 그림과 달리, 그의 그림에는 88만원 세대 취업준비생의 도전이란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시행착오에 행운이 겹치고 단순한 실험이 인연으로 이어지며 이슈, 이야기, 시선을 키워드 삼아 지면을 꾸려왔습니다. 이슈가 있는 곳에는 항상 새로운 이야기가 있는데, 뭔가 좀 다른 시선으로 봐야 그 이야기가 보일 텐데, 매주 인쇄된 And를 받아들 때마다 이런 생각을 합니다.

지난 1년간 하고 싶었는데 못한 이야기가 많습니다. 작가 노희경씨가 올 봄 한 칼럼에서 얼핏 자기 집안의 ‘스무살 분가 원칙’을 얘기하더군요. 스무살이 되면 남자든 여자든 무조건 집을 떠나 독립해야 한다는 겁니다. 캥거루족이 넘쳐나는 시대에 그렇게 하는 이유를 물어보려는데 아직 인터뷰를 못했습니다. 곧 찾아가볼 생각입니다. 녹색 바람을 타고 급성장한 자전거 산업이 벌써 위기란 얘기도 들었습니다. 자전거 업체마다 매출 성장세가 크게 둔화됐다는군요. 중국의 조선족 커뮤니티가 사라져간다고 합니다. 어느 정도인지 궁금해서 취재할 방법을 궁리 중입니다.

태원준 기자 wjt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