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양 3만피트 상공 기내서 “응애∼”

입력 2010-11-17 18:03


“손님 여러분, 방금 우리 비행기에서 건강한 남자아이가 태어났습니다.”

17일 오전 3시 일본 근해 태평양 3만 피트 상공을 비행 중이던 대한항공 로스앤젤레스(LA)발 인천행 KE012편 기내에서 출산 소식이 전해졌다.

산모인 한국계 미국인 전모(45)씨가 진통을 느낀 건 이날 오전 2시쯤. LA공항을 이륙한 뒤 8시간 30분쯤 지났을 때였다. 임신 7개월째인 전씨가 복부 통증과 호흡곤란을 호소하자 기내 승무원은 곧바로 산소호흡기가 있는 좌석으로 안내해 산소를 공급했다. 하지만 상태는 호전되지 않았다.

마침 그녀 앞자리에는 미국인 조산사 비키 펜웰(52·여)씨가 타고 있었다. LA에서 2100여명의 출산을 도운 30년 경력의 베테랑 조산사인 펜웰씨는 필리핀 마닐라에 조산원을 개업하기 위해 출장을 가던 중이었다. 탑승객 중 서울아산병원 심장내과 전문의 박덕우(37) 박사도 힘을 보탰다.

이들은 승무원들과 함께 전씨를 1등석으로 옮긴 뒤 기내 가운과 담요를 잘라 즉석에서 아기 요람을 만들었다. 승무원들은 응급처치 매뉴얼에 따라 전씨의 손을 잡고 “하나 둘 셋 넷”을 외치며 출산을 도왔다. 그리고 진통이 시작된 지 1시간 만에 “응애∼” 하는 건강한 아기 울음소리가 기내에 울려 퍼졌다. 일부 승객들은 안도의 한숨과 함께 눈물을 흘렸다. 대한항공 기내에서 2년6개월 만에 태어난 새 생명이었다. 전씨와 아기는 인천공항 도착 즉시 인천 신흥동 인하대병원으로 옮겨졌다.

박재찬 기자 jeep@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