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광·한화 수사 한달 넘게 제자리… 검찰, 늪에 빠지나

입력 2010-11-17 18:01

검찰의 태광·한화그룹 비자금 수사가 안갯속을 헤매는 모습이다. 서울서부지검 형사5부(부장검사 이원곤)는 전방위 압수수색, 그룹 관계자 연이은 소환, 광범위한 계좌추적 등 저인망식 수사를 한 달 넘게 진행 중이지만 이렇다 할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심지어 수사가 용두사미로 끝나는 것 아니냐는 전망마저 나왔다.

검찰은 17일 태광그룹의 케이블TV 계열사와 협력사 7∼8곳에 수사관을 보내 회계자료와 컴퓨터 하드디스크 등을 확보했다. 검찰은 이들 회사가 프로그램 공급비 등을 부풀려 이호진 회장 일가의 비자금 운용에 관여한 것으로 보고 있다. 검찰은 압수한 자료를 분석해 이 회장 측이 과거 방송사업을 확장하는 과정에서 정·관계 로비 등 불법·편법을 저질렀는지도 확인할 방침이다.

하지만 검찰 수사가 장기화되면서 정·관계 로비 같은 핵심 의혹은 미제로 남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검찰은 지난달 13일 태광그룹 본사를 압수수색하며 수사를 본격화한 뒤 이 회장 사무실과 모친인 이선애 태광산업 상무의 자택, 서울국세청 등 수십 곳을 압수수색했지만 비자금 전모를 밝혀줄 물증 확보에는 번번이 실패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여전히 비자금 규모 파악에 매진 중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서울서부지검 관계자는 “(현재 수사는) 용처보다는 (비자금 조성 경위, 규모 파악 같은) 앞부분에 중점을 두고 있다”고 말했다.

의혹의 ‘몸통’인 이 회장과 이 상무의 소환 시기도 오리무중이다. 검찰은 오너 모자를 불러 비자금 조성뿐 아니라 용처 등도 일괄 조사할 방침이다. 이를 위해 소환 전에 비자금 전모를 파악해야 하는데 시간이 계속 미뤄지고 있다. 재계나 해당 기업은 “반복되는 압수수색 때문에 피해가 매우 크다”며 불만을 터뜨리고 있다.

검찰은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 비자금 의혹과 관련, 지난 16일 그룹 최상순 부회장을 참고인 신분으로 불러 조사했다. 검찰은 최 부회장을 상대로 김 회장 측이 차명증권 등을 통해 수백억원대 비자금을 조성하도록 지시했는지 등을 추궁한 것으로 전해졌다. 최 부회장은 2002년 구조조정본부장을 맡아 그룹의 재무·경영 기획을 총괄했고, 2007년 부회장에 임명된 인물로 그룹의 2인자로 꼽힌다. 김 회장 소환 시기가 임박한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하지만 한화 수사 역시 핵심에 접근하지 못하고 있다. 선대 회장의 자금이 차명계좌를 통해 남아 있다는 한화 측 해명을 돌파할 방안을 찾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박지훈 기자 lucidfal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