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돋을새김-이강렬] 10만원짜리 불법 정치후원금 허용 안 된다

입력 2010-11-17 17:58


“기업들도 문화예술 메세나처럼 정치 후원금을 내도록 유도할 필요가 있다”

오래된 이야기다. 언론인에서 정치인으로 변신한 국회의원에게 “정치를 하니 뭐가 좋으냐?”고 물었더니 서슴없이 “돈을 마음대로 써서 좋다”고 했다. 한 여권 중진은 18년 전 정치에 입문을 할 때 신생 정당 총재로부터 5억원을 현금 다발로 받았다고 회고했다. 그는 난생처음 그렇게 큰 돈을 현금으로 만져보았다고 말했다. 지금은 은퇴한 여권의 실세였던 모씨는 총선 때 기업에서 하루 저녁에 10억∼20억원씩을 가져와 자파 의원들에게 몇 억원씩을 나눠주고 나머지는 당에 전달했다고 ‘무용담’을 말했다. 20여년 전 서울 강남의 한 지구당을 맡았던 모 의원은 당시 지구당 한 달 유지비만 4000여만원이 들었다. 그는 기업에서 부정한 돈을 받았다가 정치권에서 퇴출당했다.

‘호랑이 담배 먹던 시절’의 이야기다. ‘오세훈 법’으로 불리는 정치자금법 개정안이 지난 2004년 3월 2일 국회를 통과하면서 정치는 꽤 맑아졌다. 정치권과 유착한 기업과 단체의 부정한 돈이 정치권으로 흘러드는 것을 어느 정도 차단했다.

그러나 ‘필요는 발명의 어머니’라고 정치자금이 궁한 정치인들은 이후 10만원 쪼개기 방식으로 기업과 단체로부터 거액의 불법 정치 후원금을 조달해 왔다. 검찰의 수사를 받고 있는 청목회 입법로비 사건과 농협 소액 후원금 사건이 그 대표적 사례다. 기업과 단체들이 고액을 10만원씩 쪼개 의원 후원회 계좌에 입금한 다음에 입금자 명단과 그 내역을 통보하는 것은 정가관행이 되었다. 그렇게 입법로비를 해온 것이다.

연일 거친 말싸움을 하며 사사건건 대립하고 반목하는 여야가 10만원 이하의 소액후원금에 대한 제한을 완화하는 쪽으로 의견을 모은 모양이다. 초록은 동색이라더니 참으로 뻔뻔하다. 확인은 안 되지만 민주당이 1회 10만원 이하의 정치자금은 대가성을 따지지 않는다는 안을 마련해 한나라당에 전달했다는 소식이 돈다. 10만원 소액 후원금을 일일이 확인하는 것이 어렵다는 이유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꼼수다. 이익단체들이 수백명의 회원을 동원해 10만원씩 쪼개어 입법로비 대상인 의원 후원회 계좌에 몇 천만원씩을 넣은 것이 드러나고 있는데 이것을 눈감으라니 백주에 도둑질을 하겠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청목회 후원금을 받은 것으로 확인된 모 의원은 “약자를 도운 것도 죄냐?”고 국회 본회의 현안질의에서 정부를 상대로 따졌으니 염치가 없이 막된 만무방이다.

현실을 도외시한 현행 정치자금법은 분명 여러 문제가 있다. 특히 기업과 단체의 건전한 후원금까지 막은 것은 지나친 규제다. 준조세 성격의 정치후원금이라는 명목으로 수백억원씩을 내던 기업들이 ‘오세훈 법’ 이후 자유로워졌으니 기업들만 살판났다. 세월도 흘러 지금은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 강조되고 있다.

기업들도 문화예술 분야에 후원하는 메세나처럼 정치 후원금을 내도록 유도할 필요가 있다. 현행처럼 선관위에 지정기탁이 아닌 비 지정기탁으로 기부하도록 하고 기부 시 큰 폭의 세제 혜택을 주는 것이다. 중앙당이 이 후원금을 받아 의원들에게 배분하도록 하면 된다. 정치후원금 기부의 기준과 절차, 그리고 사용을 매우 엄격히 해야 한다. 소액 10만원 기부금을 눈감아 주자는 것보다 근본적으로 기업과 단체들이 공식적으로 정치 후원금을 낼 수 있는 길을 터야 할 때가 왔다.

여기에 꼭 한 가지 덧붙여야 할 것이 있다. 무엇보다도 정치자금법 위반자의 처벌을 무겁게 해야 한다. 입법로비를 목적으로 정치자금을 받았을 경우 적어도 15년 이상 피선거권을 박탈하고 사면 복권에 제한을 두어 영구히 정치권에서 추방해야 한다. 현행 정치자금법 처벌 조항은 너무 약하다. 당선무효 조항과 의원직 박탈 조항을 더 완화해 쉽게 퇴출시키도록 해야 한다. 검찰은 청목회 관련 의원들을 ‘뇌물죄’로 처벌하는 것을 고려 중이라고 한다. 당연하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우리의 정치자금 기부 문화가 한 단계 성숙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강렬 편집국 국장기자 ryo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