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층 추락 2살 아이 맨손으로 받은 고교생 김한슬양 “아빠가 교회를 나가기 시작했어요”
입력 2010-11-17 17:39
어둠이 짙어가던 지난달 30일 오후. 서울 천호동 주택가 2층 창문에 무언가가 대롱대롱 걸려 있었다.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웅성댔다. 걸려 있는 건 갓난아기였다. 약간의 시간이 흘렀다. 시계가 오후 6시35분을 가리켰을 때 갑자기 아기가 떨어졌다. 5m 남짓한 높이. 시간이 없었다. 그때 교복을 입은 한 여학생이 몸을 날렸다. 가까스로 아기의 양쪽 겨드랑이에 양손을 넣었다. 아기를 품에 안은 채 낙법을 사용해 오른쪽으로 넘어졌다. 능숙했다. 아이는 놀랐는지 ‘으앙’ 하고 울음을 터뜨렸을 뿐, 무사했다.
사건 하루 전
지난달 29일 오후 10시30분. 김한슬(17·서울 광문고 1년)양이 고모 부부와 함께 살고 있는 서울 천호동 집(집은 하남시지만 학교 때문에 부모와 떨어져 살고 있다). 성경책을 손에 쥔 채 한슬과 언니, 고모가 모여 앉았다. 매일 밤 한 시간 동안의 가정예배. 드린 지 한 달 반째다.
한슬은 이날도 속으로 조용히 기도했다. ‘하나님 저는 꿈, 희망도 없고, 할 줄 아는 것도 없는 나약한 존재입니다. 저를 높이 세워주시고 꿈을 찾아주세요.’ 한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한 시간 정도 기도하자”고 누군가 말한 적도 없다. 고모와 언니와 손을 잡고 있노라면 한 시간의 기도는 몇 분처럼 느껴진다.
한슬은 씩씩해보여도 한없이 여렸다. 인간관계에 대한 왠지 모를 두려움이 어린 그를 옥좼다. 1년 전인 중학교 3학년 땐 우울증 때문에 밖에 잘 나다니지도 못했을 정도다. 혹시 나아질까 싶어 교회에서 성가대와 찬양팀 활동을 열심히 했지만 힘이 나지 않았다. 가정예배는 작은 소녀가 잡으려 했던 마지막 지푸라기와 같았다.
사건 30분 후
친구와 오후 3시에 약속이 있었지만 이날따라 네 시간 늦춰졌다. 한슬은 오후 6시30분쯤 집을 나섰다. 대문을 나서 오른쪽으로 몸을 틀었다.
5분 뒤 떨어지는 아기를 받아들었다. 아기는 아무도 없는 틈에 화장대와 텔레비전을 밟고 창틀로 올라갔었다. 아기 할머니에게 건넨 뒤 뒤도 돌아보지 않고 가던 길을 재촉했다. ‘친구를 만나야 하는데….’ 하지만 쿵쾅거리는 심장은 멎을 줄 몰랐다. 갑자기 긴장이 풀어진 뒤의 증상 같았다. 마음을 안정시키고 싶었다. 그의 발길이 닿는 곳. 교회였다.
“하나님, 아기가 한 군데도 다치지 않게 해주세요.” 아기가 한 곳이라도 다치면 다 자기 책임인 것 같아 한슬은 괴로웠다. 그래서 다시 기도했다. “아직 갓 난 아기잖아요. 아프면 안 되니까 아기 대신 차라리 제가 아프게 해주세요.”
교회에 와 기도를 하니 마음이 조금 편해졌다. 집에 돌아오자 아기의 할머니가 주스 2통을 사 들고 왔다. 아기는 3대 독자였다. 할머니는 “기독교인이라 이런 일을 했구나”라며 감탄을 연발했다.
이후 아기가 걱정돼 집에 가봤다. 다행히 아기에게 큰 부상은 없었다. 아기의 집 현관엔 다른 종교를 나타내는 스티커가 붙어 있었다. 한슬은 “예수 믿으세요!”라고 힘차게 외치고 전도하고 싶었지만 다음 기회를 구하며 속으로 되뇐 채 집을 나섰다.
사건 다음 월요일
‘히어로’ ‘원더우먼’ ‘슈퍼걸’ 이미 학교의 스타가 된 그가 새롭게 얻은 별명이었다. 인터넷 포털사이트 검색창에 ‘김한슬 미니홈피’가 상위권에 올랐다. 하루 20명 남짓에 불과하던 홈피 방문자 수는 800명을 넘었다. 일촌 신청이 이어졌다. 방명록엔 격려의 글이 차고 넘쳤다.
선물도 쇄도했다. 학교 근처 분식점 아저씨가 오전에 한슬을 찾아와 꽃다발을 전했다. 같은 반 친구들은 꽃다발보다 아저씨가 덤으로 준 2000원짜리 떡볶이 쿠폰에 열광했다. 친구들은 “네 덕에 떡볶이 배터지게 먹을 수 있겠다”며 기뻐했다.
자신을 밝히지 않은 한 사람은 “너무 대견합니다. 어른들이 많이 배워야겠어요”라는 편지와 함께 흑마늘을 보냈다. 한 입 베어 물고 한슬은 맛이 쓴지 혀를 내밀면서도 기쁨을 감추지 않았다. 경남의 한 목사님은 “영어 공부 열심히 하세요”라며 사전을 보내줬다. 한 법조인도 “안 좋은 사건만 연이어 일어나는데 어린 학생이 너무 대견하고 기특해 편지를 썼다”며 격려했다.
사건 2주 후
2주가 지난 13일 한슬을 만났다. 2주 만에 많은 변화가 있었다.
“많이 아팠어요.” 아기를 구하려고 담을 올라가다 철조망에 긁힌 오른쪽 다리가 아직 성치 않았다. 아기를 받은 채 바닥에 구르면서 오른쪽 팔꿈치도 찢어졌다. 사건 다음날부터 온몸이 아파 병원에 갔더니 골반이 휘었다는 진단이 나왔다. 어깨 통증도 심했다. 1주일에 네 번이나 병원에 가야 했다.
“기도가 이뤄진 것”이라고 그는 웃어 넘겼다. “제게 힘을 달라고 했던 가정예배에서의 기도, 친구와의 약속이 늦춰진 것, 아기 대신 제가 고통을 받는 것. 모두 하나님의 뜻이죠.”
그는 사고 당시 절체절명의 순간에 낙법을 썼다.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했던 유도 덕분이었다. 한슬의 아버지는 딸이 중2였을 때부터 유도를 금지했다. “몸매 망가진다”는 게 이유였다. 한슬은 다른 학원비로 받은 돈을 유도 학원에 낼 정도로 유도를 좋아했다. ‘검은 띠’까지 땄다. “이제 몰래 다니지 않아도 돼요.” 그는 크게 웃었다. 사건 이후 아버지는 유도하는 걸 인정했다.
꿈도 찾았다. 그의 꿈은 경찰. 딸이 곱게 자라주길 바랐던 아버지는 이것 역시 반대했었다. 그러나 사건 이후 아버지의 반대는 누그러졌다. 하지만 가장 좋은 건 따로 있다며 기뻐했다.
“이 일이 있은 후 아빠가 교회를 나가시기 시작했답니다.”
글 조국현 기자·사진 구성찬 기자 joj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