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롬보 빈민촌 ‘해피어린이 교육센터’ 교사 하르시 라너싱허씨
입력 2010-11-17 17:28
하르시 라너싱허(34)씨. 그녀는 스리랑카의 수도 콜롬보 마딱구리어(15구역)에 있는 무료 교육시설 ‘해피어린이 교육센터’에서 영어를 가르친다. 이곳은 6년 전 쓰나미로 폐허가 됐던 곳이다. 한국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라너싱허는 기아대책(회장 정정섭)이 17일부터 본격적으로 운영에 들어간 이 교육센터 개원식에서 통역도 맡았다.
그녀는 2003년부터 4년간 인천시 산곡동 일대에서 공장에 다녔다. 이후 3년은 교회학교와 학원 등에서 영어를 가르쳤다. ‘코리안 드림’을 실현한 듯했다.
라너싱허는 한국에 오기 전 스리랑카 로스쿨에 합격했었다. 하지만 집안 형편이 좋지 않아 진학을 포기했다. 자신이 공부에만 매달리면 홀로 돈을 벌고 있는 아버지와 두 동생을 키우고 있는 어머니의 고생이 심해지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남들처럼 코리안 드림을 선택했다. 한국의 겨울은 정말 너무 추웠다. 김치 냄새는 곤혹스러웠다. 처음엔 플라스틱 몰딩과 원단회사 등 닥치는 대로 일을 했다. 하지만 생각처럼 돈이 벌리지 않았다. 여느 외국인 노동자처럼 그녀도 여러 회사를 옮겨 다녔다. 그러다가 그만 자궁에 혹이 생겨 더 이상 일을 할 수 없게 됐다. 수술할 돈도 없었지만, 무엇보다도 겁이 나서 병원에 다시 갈 용기도 없었다.
아무런 희망 없이 지내던 어느 날 한 줄기 생명의 밧줄을 잡게 됐다. 인천시 부평 천청교회(정상현 목사)가 베푸는 사랑의 그물에 걸린 것이었다. 정 목사를 만나면서 난제들이 술술 풀렸다. 밀린 월급도 받게 됐다. 2004년 7월에는 정 목사의 주선으로 수술까지 받았다.
“수술하기 하루 전이었어요. 한 집사님이 안수기도를 해주셨는데 울면서 기도해주시는 거였어요. 저도 모르게 눈물이 나고 온몸이 뜨거워지더니 뭔가 모를 에너지가 들어오는 느낌을 받았어요. 순간적으로 온 몸이 돌처럼 굳어지는 것이었어요. 정신을 차리고 나니 ‘세상에서 내가 가장 행복한 사람이다’는 음성이 들리는 것이었어요.”
그해 11월부터는 교회에서 운영하는 영어학교 강사로 일하게 됐다. 영어를 가르치는 입장이 되자 매사에 자신감이 생겼다. 성령의 음성도 들었다고 했다. “돌아가라. 어서 귀국해 네 동네 불쌍한 이웃, 버려진 어린이들의 영혼을 구하는 일에 나서거라.”
인천시 부평 행복한교회 김석홍 목사로부터 체계적인 성경공부도 배웠다.
“지난 1월 13일 마침내 성경책과 여행용 가방 하나만 들고 콜롬보로 돌아왔어요. 영국인이 운영하는 영어 강사 자격증 시험을 봤는데 어렵지 않게 통과했어요. 그러다가 지난 4월 권혁 한국기아봉사단 콜롬보 지부장을 만난 것이 인생의 전환점이 됐지요.”
권 지부장이 운영하는 해피칠드런센터는 2세부터 6세까지 유치원생 70여명과 초·중등학생 200여명에게 영어와 컴퓨터를 가르친다.
15구역은 스리랑카에서 가장 가난한 아이들이 사는 곳이다. 편모이거나 아빠가 있더라도 마약에 빠져 있고, 조직 폭력배인 아빠를 둔 아이들도 많다.
“바울처럼 살고 싶어요. 가는 곳마다 복음의 텐트를 만들어 생명의 말씀을 전하고 싶어요. 이제 저에게 조국은 두 개입니다. 한국을 떠났지만 영원히 잊을 수 없어요. 최 집사님, 김 권사님, 오 권사님 등 수많은 분들이 생각이 나요. 엄마라고 부르던 분이 가장 생각이 많이 나요. 부침개를 만들어주던 그분이 너무 보고 싶어요.”
콜롬보(스리랑카)=글·사진 윤중식 기자 yunj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