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으로 본 기독교 100년] 금수회의록(안국선 지음, 황성서적업조합, 1908)
입력 2010-11-17 17:31
일본 횡포·관리 부패 풍자… 최초의 기독교 소설
이 책은 주인공이 인간의 몹쓸 행태를 성토하는 동물들의 회의 광경을 꿈속에서 본 것을 독자들에게 들려주는 우화소설이다. 또한 일본의 횡포와 관리의 부패상을 풍자하는 정치소설이기도 하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기독교 사상을 문학적으로 형상화시킨 개화기의 대표적 기독교소설이다. 이 소설은 일정한 줄거리가 없이 여덟 동물이 연사로 등장하여 열변을 토하는 내용으로 짜여져 있다.
맨 처음 연사로 까마귀가 나와 인간의 불효를 개탄하고 두 번째 연사인 여우는 인간의 위선과 간사함을 거론하며 일본 제국주의를 비판한다.
“세상 사람은 당당한 하나님의 위엄을 빌려야 할 터인데 외국의 세력을 빌려 몸을 보전하고 벼슬을 얻으려 하며 타국 사람을 부동하여 제 나라를 망하게 하고 제 동포를 압박하니 그것이 우리 여우보다 나은 일이오?”
“대포와 총의 힘을 빌려서 남의 나라를 위협하여 속국도 만들고 보호국도 만드니 불한당이 칼이나 육혈포를 가지고 남의 집에 들어가서 재물을 탈취하고 부녀를 겁탈하는 것이나 다를 것이 무엇 있소?”
셋째 연사인 개구리는 사람들의 좁은 소견을 지적하고, 넷째 연사인 벌은 말(言)과 생각이 다른 인간의 이중성을 규탄한다. 다섯째 연사인 게는 인간이야말로 남의 압제를 받아도 분노할 줄 모르는 창자 없는 존재라고 주장하고, 여섯째 연사 파리는 눈앞의 이익만 찾아 서로 싸우는 인간들의 실상을 파헤친다. 일곱째 연사로 나온 호랑이는 관리들의 탐욕과 포악성을 공박하고, 마지막으로 원앙새가 등장하여 사람들의 음란함을 나무란다.
이 책은 을사조약 체결 이후 일본의 국권 침탈이 노골적으로 자행되던 시기에 발간되었다. 그러한 때에 기독교 사상을 대안으로 제시하며 민족의식을 고취한 ‘금수회의록’은 발간 3개월 만인 1908년 5월에 재판을 찍을 정도로 독자로부터 호응을 얻었다. 그러나 당국은 다음 해 5월 치안유지 방해를 구실로 판매 금지시켰다.
저자 안국선은 관비 유학생으로 일본에 가서 정치학을 공부하고 왔으나 고종 황제 폐위 운동에 연루되어 감옥에 갇혀 있다가 유배를 떠나 1907년에 풀려났다. 이후 활발한 계몽운동을 벌였으며 ‘연설법방’ ‘정치원론’ ‘외교통의’ 등을 펴냈다. 특히 ‘정치원론’은 한국 최초의 체계적인 정치학 교과서로서 공화주의를 주창한 선구적 저술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한일병합조약 이후 총독부에서 임명한 지방관리가 되고 ‘공진회’와 같은 친일 성향의 작품을 내놓은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안국선이 기독교 신자가 된 것은 감옥에 있을 때 선교사 아펜젤러와 벙커 등의 전도를 통해서였다. 그리하여 최초의 기독교 소설인 ‘금수회의록’이 나오게 된 것이다. 이 작품은 선교사 게일이 번역한 ‘천로역정’에서 모티브를 얻은 것으로 보인다. 꿈의 형식을 빌린 것, 작품 곳곳에 나오는 성경 말씀, 인간 행위의 판단 기준으로 기독교 사상을 제시하는 점 등이 그것이다. 저자는 작품에서 효도, 형제우애, 부부화목 등 전통사회의 유교 윤리도 내세우고 있지만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기독교 윤리를 작품의 기조로 삼고 있다.
‘금수회의록’의 결말에 나오는 주인공의 권면은 오늘날도 유효한 메시지이다.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니 하나님이 아직도 사람을 사랑하신다 하니 사람들이 악한 일을 많이 하였을지라도 회개하면 구원 얻는 길이 있다 하였으니, 이 세상에 있는 여러 형제자매는 깊이깊이 생각하시오.”
부길만 교수 (동원대 광고편집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