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선 약사의 미아리 서신] 교회에 가고 싶다는 ‘반짝이 이모’… 제가 부끄러웠습니다
입력 2010-11-17 17:32
추위가 한 걸음 더 삶 속에 들어오면서 일상의 모습이 조금씩 달라지고 있는 초겨울입니다. 등허리를 휘돌아 도는 찬바람이 두꺼운 코트 깃을 여미게 하는 지금, 마음은 평안하신지요.
제가 살고 있는 미아리텍사스의 겨울은 다른 동네보다 일찍 오며 깊고 아프게 옵니다. 햇살이 강한 낮에는 인적이 뜸하지만 해가 뉘엿뉘엿 지기 시작하는 저녁이 오면 거리를 메우는 사람들이 하나 둘 늘어나면서 비로소 동네는 기지개를 펴며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밤새 일을 마친 ‘아이’들이 자는 낮 시간에 ‘가게’를 청소하고, 빨래를 하고, 이런 저런 맛있는 반찬을 만들어 놓고 퇴근하는 낮타임 주방이모들과 밤 시간 동안 청소하고 아이들 심부름을 해주는 밤타임 주방이모들이 출근하느라고 약국 앞 작은 골목이 시끌벅적해집니다.
삼삼오오 짝을 지어 약국에 들러 피로회복제를 마시면서 고단했던 하루를 이야기합니다. 같은 가게에서 일을 하는 이모들이 서로 반갑게 만나 무슨 반찬은 어디에 있고, 새로 산 양념은 어디에 갈무리해 두었다는 등의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은 참으로 평안해 보이지요. 그렇게 저녁이 시작되면 낮에 일하던 마담이모들과 아이들이 지친 몸과 영혼으로 집으로 향합니다. 그 발걸음이 무거워 보여 애처롭습니다.
‘반짝이’라는 별명의 이모가 퇴근하기 위해 골목길에 들어서면 동네는 환해지고 화려하기까지 합니다. 빨갛게 바른 입술과 진하게 바른 보랏빛 아이 섀도는 쉽게 흉내 낼 수 없는 그녀만의 노하우가 있어 보입니다. 반짝임이 좋다면서 스팽글 많은 옷을 늘 입고 다니는 그녀에게 제가 붙여준 별명이 ‘반짝이 이모’입니다. 퇴근길에 걸치는 술 한 잔이 유일한 삶의 위로라고 이야기하면서 늘 술 깨는 약을 사 먹곤 한답니다. 집에 가면 돌봐야 할 노모가 있다는 이야기, 명문여대에 다니는 딸이 있다는 이야기, 왕년에 정말 잘 나갔었다는 이야기 등등 그녀의 이야기는 끝이 없었습니다. 술을 마시기만 하면 지나치게 이야기가 길어져 그녀와 함께 술을 마시는 사람이 없지요. 그래서 그녀는 늘 혼자 술을 마시곤 하였답니다.
누구도 상대해 주지 않는 자기 이야기를 들어줘서 고맙다고 그녀가 제게 맛있는 케이크 선물을 하였습니다. 그저 이야기를 들어주기만 했는데 쑥스럽게 뭔 선물이냐고 거절했으나 그녀는 한사코 제게 주어야 한다고 케이크 상자를 약국에 두고 가버린 일도 있었습니다.
며칠 뒤 반짝이 이모가 거나하게 취한 상태로 약국 문을 벌컥 열고 들어왔습니다. 옆집 가게에 있는 어떤 이모가 자기 단골손님을 다 뺏어 갔다고 아주 나쁜 사람이라고 약국 안이 쩌렁쩌렁 울리게 이야기하면서 엄청 성질이 났다고 소리 지르는 그녀가 참으로 아파보였습니다. “그렇게 소리 지르면 좀 나아지나요”하고 제가 되물었지요. “그러면 그 나쁜 사람이 없어지나요?”
거슴츠레한 눈으로 저를 바라보던 그녀의 눈빛은 그럼 어떻게 하냐고 묻고 있었습니다. 그래요 우리는 어쩔 수 없어요.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고 그리 대답하였습니다. 자기 자신밖에 모르는 우리가 뭘 할 수 있을까요. 어찌 보면 그녀에게 하는 질문이 아니라, 저 자신에게 하는 질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녀의 신산한 삶이 안타까웠고, 그녀의 삶과 많이 다를 바 없는 우리네 삶도 큰 아픔으로 다가오는 순간이었습니다. 저리도 우리를 품으시려고 두 팔 벌려 기다리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큰 사랑을 알지 못하고 부평초처럼 떠돌기만 하는 그녀가 하나님께로 가는 기쁨이 있으면 정말 좋겠다고 이야기하였지요.
그녀의 대답은 의외였습니다.
“나도 교회 가고 싶어요. 하나님 만나고 싶어요. 교회 종소리를 들으면 평안해지고 교회 노래를 들으면 왠지 기분이 좋아져요. 근데 아무도 나에게 교회 가자고 한 사람이 없었어요. 머쓱하게 혼자 가기는 좀 그래서 여적 못 가고 있었어요. 그럼 약사 선생이 나 좀 교회로 데려가 줄래요. 그럼 정말 좋겠어요.”
그녀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저의 무심함을 반성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많이 만나고 이야기를 나누었으면서도 반짝이 이모와 하나님 말씀을 왜 나누지 못했는지 알 수 없었습니다. 아직도 제 속에 남아있는 선입견 탓인 것 같다는 고백을 참으로 부끄럽지만 해야만 할 것 같습니다.
거듭나는 삶을 살겠노라고 그렇게 기도를 하고, 고백을 하면서도 성숙한 삶을 살아내지 못하는 저희들을 아직도 기다리시고 사랑하시는 하나님 아버지. 고맙습니다.
이미선 약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