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그룹, 현대 건설 인수… 예상보다 1조 더 써낸 현대그룹 “승자의 저주 없다”
입력 2010-11-16 22:07
현대그룹이 예상외의 높은 가격을 제시하며 ‘빅딜’에 성공했다. 시장에선 많아야 4조원 후반대를 예상했지만 현대그룹은 그보다 1조원 가까이 더 부르며 9년 만에 현대건설을 되찾을 절호의 기회를 맞았다. 현대그룹을 재무개선약정 대상으로 꼽으며 압박했던 채권단은 불과 1년 만에 180도 태도를 바꿔 현대그룹에 기꺼이 ‘대물’을 안겼다. 현대그룹은 ‘승자의 저주’를 비껴갈 수 있을까.
◇고가 낙찰 배경=시장도 예측하지 못한 초강수였다. 최근 만난 채권단 고위관계자도 “아무래도 가격요건이 제일 중요하지 않겠느냐”면서도 예상 가격은 최대 5조원 정도를 들었다.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결과는 예상과 달랐다. 경영권 프리미엄을 감안한다 해도 매각대상 3887만9000주(34.88%)의 시가 2조8000억원(15일 종가기준)보다 3조원 가까이 웃돈을 줄 것이라고는 상상치 못했기 때문이다. 현대그룹은 또 내년 1분기 말까지 인수자금을 전액 현금으로 내겠다는 계획서도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비가격 부문의 열세를 만회하기 위한 승부수였다.
실제 현대그룹은 가격 면에서는 이겼지만 비가격 부문에선 현대차그룹보다 낮은 점수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양측 간 점수 차이는 100점 만점에 1점 미만이었다. 현대그룹의 전략이 완벽하게 들어맞은 것이다.
◇인수는 했는데…=일단 우선협상자가 되긴 했지만 현대그룹은 갈 길이 멀다. 사내 유보금 1조5000억원과 선박 등 일부 자산매각 수익 외에 2조5000억원가량이 외부 차입금이기 때문이다.
재무적 투자자(FI)에 대한 보상도 난제다. 무리한 조건을 제안했을 경우 곧장 ‘승자의 저주’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대우건설을 인수했던 금호아시아나 그룹은 6조원이 넘는 인수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FI에 무리한 옵션을 제안했다가 결국 대우건설을 다시 내놓아야 했었다.
현대그룹의 경우도 7000억원을 투자한 동양종합금융증권 외에 해외 FI가 일부 참여한 것으로 알려져 이들과의 계약 조건이 초미의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이에 진정호 현대그룹 전략기획본부 상무는 “FI와의 계약 조건에 대해서는 확인해 줄 수 없다. (계열사 매각은) 시장의 루머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금융권에서는 현대건설이 현대그룹의 차입 리스크를 떠안을 가능성도 제기하고 있다. 금융권 관계자는 “현대그룹이 향후 그룹의 캐시카우(수익창출원) 역할을 맡게 될 현대건설 운영에 무리수를 둘 가능성이 높다”고 우려했다.
◇부활 꿈꾸는 현대그룹=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은 “고 정주영, 정몽헌 두 선대 회장이 만들고 발전시킨 현대건설을 되찾은 만큼 현대그룹의 적통(嫡統)성을 세우고 옛 영광을 재건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소회를 밝혔다. 그동안 지긋지긋하게 따라붙었던 적통성 논란을 마침내 마무리지었다는 안도의 한숨이었다.
현대그룹은 인수 성공 시 재계순위가 급상승함은 물론 기복이 심한 해운업(현대상선) 대신 현대건설을 중심으로 안정적인 수익 포트폴리오를 구축할 수 있게 된다. 현재 경색국면인 대북사업이 다시 활기를 찾을 경우 현대건설을 중심으로 북한 사회간접자본(SOC) 사업에서 이익을 극대화시킬 수도 있다. 현대상선·현대로지엠은 건설자재·플랜트 설비 등의 국내외 수송을 담당하고, 현대증권은 현대건설과의 프로젝트 파이낸싱을 통해 수익을 창출하는 등 계열사 간 시너지 효과도 가능하다. 잊혀진 명가였던 현대그룹이 과거의 영광을 재현할 수 있을지 세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강준구 기자 eye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