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금융 “외환은행 인수” 급선회… 금융권 초긴장

입력 2010-11-16 21:26


하나금융지주가 외환은행 인수·합병(M&A)으로 방향을 틀었다. 그동안 우리금융지주 인수에 관심을 보였던 하나금융의 ‘기습’에 금융권은 당황했다. 금융권에서는 하나금융을 중심축으로 초대형 지각변동이 일어날 조짐이다. 하나금융이 외환은행 인수에 성공하면 자산 316조원의 금융그룹으로 탈바꿈한다. 자산 300조원이 넘는 ‘빅4’(우리금융, KB금융, 하나+외환, 신한금융)가 치열하게 경쟁하는 체제가 되는 것이다. 하나금융이 우리금융을 인수할 경우 자산 532조원의 공룡이 탄생한다.

◇“26일 이전에 결론”=김승유 하나금융지주 회장은 16일 서울 을지로1가 하나은행 본점 집무실에서 기자들과 만나 론스타와 구속력 없는 논-바인딩 양해각서(non-binding MOU)를 체결했다고 밝혔다. 론스타는 외환은행 지분 51.02%를 보유한 최대주주다. 통상 MOU는 1대 1 협상이 이뤄지는 반면 논-바인딩 MOU는 여러 명과 동시에 협상을 진행할 수 있다.

김 회장은 “현재 외환은행을 실사 중이다. 26일 이전에 결론을 내겠다”고 했다. 26일은 우리금융지주 인수의향서(LOI) 제출 마감일이다. 협상이 결렬되면 우리금융지주 인수전에 뛰어들겠다는 뜻이다.

금융권에서는 호주 ANZ은행과 협상이 지지부진하자 론스타가 하나금융에 의사를 타진한 것으로 알려졌다. 론스타나 하나금융 모두 양다리를 걸치면서 협상력을 높이고 있는 셈이다.

하나금융은 경영권 프리미엄 10% 이상을 주겠다고 제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인수자금은 내부 보유현금 2조원에다 유상증자를 통해 조달한 돈을 더해 충당할 것으로 보인다. 외환은행이 매각되면 2003년 8월 론스타가 2조1548억원에 사들인 지 7년 만에 주인이 바뀌는 것이다. 론스타는 그동안 일부 지분 매각, 분기 배당 등으로 2조1262억원을 회수했다.

◇왜 외환은행 선택했나=김 회장은 ‘상업적 판단’이라고 했다. 외환은행을 인수하는 것이 우리금융 인수보다 더 돈이 된다는 말이다. 소매금융, 프라이빗 뱅킹(PB)에 강점을 지닌 하나금융과 외국환업무, 기업금융에 강한 외환은행의 결합이 시너지 효과 면에서 가장 이상적이라는 판단이다.

김 회장은 “외환은행은 국내 외국환 업무의 40%를 점유하고 있을 뿐 아니라 해외 네트워크 가치가 높고, 스태프(직원)도 우수하다”고 말했다. 이어 “수출 주도형 국가인 우리나라에서 기업금융을 주력으로 하는 외환은행을 외국계 금융회사에 맡기는 게 과연 좋은 것인지 생각해봐야 한다”고 했다.

또 우리금융 인수는 여러 면에서 부담이 컸다는 분석이 나온다. 우선 주도권 다툼에서 밀릴 수 있다는 우려가 크게 작용했다. 지난 9월 말 기준 자산 200조원인 하나금융이 자산 332조원의 우리금융을 인수하는 과정에서 덩치나 조직에서 월등한 우리금융이 칼자루를 뺏을 수 있다.

여기에다 하나금융은 예금보험공사가 보유하고 있는 우리금융지주 지분 56.97% 가운데 30%가량을 인수하고 나머지는 주식 맞교환 방식으로 합병할 생각이었다. 이 경우 예보 지분이 최대 20%가량 남아 정부의 경영권 간섭이 가능해진다.

◇우리금융 민영화 어떻게 되나=정부당국자는 “당혹스럽다”고 했다. 유효한 경쟁구도를 만들어 공적자금 회수를 극대화하겠다고 밝힌 마당에 하나금융이 발을 빼고 있어서다. 하나금융, 우리금융을 빼고 나면 마땅히 우리금융 인수전에 뛰어들 곳이 없다. 이 때문에 6년을 넘게 끌다 겨우 매각 절차를 시작한 우리금융 민영화가 무산될 수 있다는 우려감이 높다. 금융위원회 관계자는 “솔직히 걱정된다. 그렇지만 이제 와서 민영화 절차를 중단할 수는 없다. 26일까지 지켜볼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우리금융은 재무적 투자자를 모집해 과점주주 체제 방식의 민영화를 추진한다는 전략을 그대로 밀고 나갈 방침이다. 다만 걱정은 크다. 금융권 관계자는 “경남·광주은행만 매각되고, 우리금융은 공중에 붕 뜰 수도 있다”고 했다.

김찬희 기자 ch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