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변재운] 교장실
입력 2010-11-16 17:41
어릴 적 학교의 교실과 복도는 마루바닥으로 돼 있었다. 아이들은 주기적으로 집에서 양초나 들기름을 가져와 문질러댔다. 덕분에 복도는 미끄럼을 탈 정도로 반들반들했다.
유일하게 교장실에 들어가 본 것도 청소를 위해서였다. 교장실은 정말로 광채가 났다. 바닥이며 유리창이며 워낙 열심히 문질러대기도 했지만, 운동부에서 타온 각종 트로피와 어우러져 교장실은 감히 범접할 수 없는 권위의 공간처럼 느껴졌다.
아닌 게 아니라 교장은 학교에서 권위 그 자체였다. 월요일마다 열리는 운동장 조회 때 교단에서 훈화하는 교장선생님의 말씀을 학생들은 부동자세로 들었고, 조금이라도 움직이는 아이가 있으면 교장선생님은 말씀을 멈추고 호통을 쳤다. 그것이 일제 군사문화의 잔재라는 것을 어른이 된 후에야 알았다.
경기도교육청이 교장실을 없애고 교무실, 행정실과 합쳐 교육지원실로 개편하는 내용의 교원 행정업무 경감대책을 발표했다. 교총과 일선 교장들이 강력 반발하자 교장실을 꼭 없애라는 뜻은 아니라고 한발 물러섰지만 폐쇄형 교장실 구조를 개선해야 한다는 생각은 분명한 것 같다.
따지고 보면 예나 지금이나 가장 변하지 않은 것이 초·중·고교의 교장실인 듯도 싶다. 여전히 교사나 학생이나 접근하기를 꺼리는 권위의 공간으로 인식되는 것도 그렇고, 그 안에 머무르는 황제적 교장의 모습도 그렇다.
하지만 권위는 질서 유지에는 효과적일지언정 교육의 품질은 담보하지 못한다. 그보다는 아이들과 눈높이를 맞추는 데서 좋은 교육이 나온다는 게 전문가들의 말이다. 지난해 방영된 SBS 스페셜 ‘아키타 산골학교의 기적’은 사뭇 다른 교장실을 보여준다. 일본에서도 산골동네인 아키타현이 전국 학력평가에서 도쿄와 오사카 등 대도시를 제치고 1위를 차지한 데는 문턱이 낮은 교장실도 한몫 했다고 한다. 즉 교장선생님이 매일 아침 등교하는 아이들과 일일이 인사를 나누고, 아이들은 수시로 교장실을 찾아와 심지어 연애 상담까지 한다. 쉬는 시간이면 아이들이 교장실 소파를 제집 소파처럼 차지하고 논다.
오랜 세월 지속돼온 교장실을 하루아침에 없애는 일이 쉽지 않으려니와 굳이 없앨 필요도 없어 보인다. 그보다는 교장실 문을 활짝 열고 아이들과 소통의 공간으로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 교육 선진국이 그렇듯 교장선생님은 아이들과 가장 친한 상담교사가 돼야 한다. 중요한 것은 공간이 아니라 생각을 바꾸는 것이다.
변재운 논설위원 jwby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