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신도 신학강좌] 영성의 길
입력 2010-11-16 17:30
(19) 십자가의 오해와 진실
영성의 중심은 그리스도요, 그리스도의 중심은 십자가다. 십자가는 그리스도에 이르는 생명의 길이다. 신학자 포사이스(P T Forsyth)가 ‘십자가의 중요성(The Cruciality of the Cross)’에서 말한 대로 그리스도는 곧 십자가다. 그리스도가 누구냐고 묻는 것은 곧 그가 십자가에서 무슨 일을 행하셨는가라고 묻는 것과 같다. 십자가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그리스도도 이해할 수 없다. 십자가가 그리스도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십자가에 대한 오해이다. 십자가에 대한 오해 중 가장 큰 것은 십자가는 기독교의 상징이라는 것이다. 유대교의 상징이 별이고 공산주의의 상징이 망치와 낫인 것처럼 십자가가 기독교의 중요한 상징인 것은 맞다. 4세기부터 십자가가 공식적으로 사용되었지만 그 이전부터 십자가가 그리스도인의 신앙의 중심이었던 것도 사실이다.
주후 2세기 말, 3세기 초에 살았던 교부 터툴리안이 말했다. “그리스도인은 발걸음을 옮기고 움직일 때마다, 집에 들어가거나 나갈 때마다, 옷을 입고 신발을 신을 때마다, 목욕하고, 식탁에 앉고, 등잔불을 켜고, 침대에 앉고 의자에 앉는 모든 삶을 살 때마다 이마에 십자가를 그린다.” 그러나 십자가가 다만 상징일 뿐이라면 상징에는 생명이 없다.
우리는 생명 없는 상징을 붙들고 씨름하는 사람들이 아니다. 그런가 하면 십자가를 인간이 겪는 삶의 고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래서 고통스러운 일이 생기면 “나는 왜 이렇게 십자가가 많아?” 하고 말한다. 또한 정의를 위해 고난받는 것이 십자가라고 믿는 사람들도 있다. 그래서 정치적으로 탄압받고 경제적으로 착취당할 때 “나는 십자가를 진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것은 십자가를 따르는 신자의 삶일 수 있으나 그리스도의 십자가 자체는 아니다.
십자가에 대한 가장 위험한 오해는 십자가를 신학화하는 오해다. 두말 할 것 없이 십자가는 모든 기독교 신학의 근거요 뿌리다. 어떤 기독교 신학도 십자가 없이 존재할 수 없다. 문제는 십자가의 신학화가 십자가를 지식화하여 특정 학자나 지적 영역에 맡겨 우리 삶에 아무런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하게 한다는 것이다. 브레넌 매닝이 말한 대로 우리는 십자가를 알지만 체험하지 못했고, 역사적 십자가는 소리 높여 외치지만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갈 2:20) 십자가는 모를 수 있다.
우리는 십자가를 교리와 신학의 영역에 지나치게 오래 묶어둠으로써 십자가의 생명력을 잃고 십자가를 영적생활과 무관한 것으로 만들고 있는지 모른다(어떤 교회는 아예 십자가를 치워 버린 교회도 있다). 십자가를 신학의 틀에 끼워 자기 신학을 말하기 위한 도구로 사용하기도 하고 부활을 강조한다고 하면서 십자가를 가볍게 여기기도 한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예수님 자신이 지신 십자가가 아닌 우리의 심리적 역사적 고난으로 동일시하거나, 십자가를 지나치게 형이상학화하여 육체적 고통과 상관없는 정신적인 무엇으로 승화시키기도 한다.
그러나 체험되지 않은 십자가는 능력이 없다. “십자가가 하나님의 능력”(고전 1:18)이라면 그 능력은 우리 삶에 체험되어야 한다. 우리 삶과 무관한 십자가는 한낱 박물관에 처박혀 있는 사형도구일 뿐이다. 십자가는 우리가 믿는 확실한 믿음의 도리일 뿐 아니라 우리 삶을 변화시키는 체험적 능력이다.
이윤재 목사<한신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