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산 케이블카는… “빼어난 경관 해칠텐데” vs “장애인·노약자도 볼 수 있게”
입력 2010-11-16 17:35
북한산국립공원에 로프웨이(케이블카)가 설치된다면 가장 유력한 노선의 출발점은 북한산성 제1주차장과 북한산초등학교 사이다. 로프웨이는 승가봉을 거쳐 보현봉에 도착한다. 세 점을 직선으로 연결하면 리프트는 백화사와 삼천사의 왼쪽으로 바짝 붙어서 지나가게 된다.
13일 오전 북한산국립공원 북한산성 탐방지원센터 앞에서 로프웨이가 건설될 것으로 예상되는 삼천리골 탐방로를 따라 올라갔다. 이미 단체 산행객 수십, 수백명이 이곳에서 백운대나 의상봉능선을 향해 떠났을 터였다. 일단 둘레길로 발길을 돌려 삼천사로 향한다.
삼천사 위 계곡을 따라가는 탐방로와 좌우로 뻗어 올라간 의상봉능선, 응봉능선은 등산로 앞까지의 교통이 불편하고 주차장이 없어 주말에도 한산한 편이다. 의상봉·응봉 능선길은 북한산 주봉인 백운대를 왼편으로 바라보며 주능선으로 뻗어 있다. 이 길을 북한산에서 조망이 가장 좋은 곳으로 꼽는 등산객들이 많다.
로프웨이는 삼천리골을 오르는 등산객의 머리 위로 지나가게 된다. 우이령보존회 조상희 회장은 “북한산에 로프웨이를 설치하면 안 되는 가장 큰 이유는 경관이 훼손되기 때문”이라며 “응봉능선이나 삼천리골 탐방로에서 보는 의상능선의 경관이 망가질 것”이라고 말했다.
로프웨이가 지나갈 궤적을 보기위해 삼천리골 오른편의 응봉능선으로 발길을 돌렸다. 높은 곳에 오르니 의상봉, 용출봉, 용혈봉, 증취봉, 나월봉, 나한봉, 문수봉, 보현봉으로 이어지는 암릉이 한 눈에 들어왔다. 국립공원관리공단 노윤경시설팀장은 철탑의 높이가 20m∼30m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케이블카는 암릉의 스카이라인보다 한참 낮은 산허리 밑을 지나가게 되는 것이다. 12일 의상봉에 올랐을 때 만난 장모씨(62)는 “북한산에 2000여개의 모양바위가 있는데 케이블카를 타고서는 의상능선에서 보는 것과 같은 다양한 바위와 암릉을 볼 수 없다”고 말했다.
응봉능선이 주능선인 비봉능선과 만나는 곳인 사모바위에 도착했다. 이곳에는 넓은 헬기 착륙장과 공터가 있어서 주말 점심 무렵이면 단체 등산객이 펼쳐 놓은 음식 냄새가 진동한다. 대남문 방향으로 15분 더 걸으니 승가봉이다. 이 봉우리와 가까운 북쪽 사면 능선에 로프웨이 철탑이 꼽히게 된다. 산악인 경규양씨가 항공사진과 위성위치추적장치(GPS)를 확인해 본 결과 이 곳은 출발점으로부터 3.19㎞다. 로프웨이는 여기에서 방향을 40도 가량 틀어서 보현봉까지 1.03㎞를 더 가 전체 길이는 4.22㎞가 된다.
보현봉은 주능선에서 약간 남쪽으로 돌출돼 있다. 때문에 로프웨이는 능선을 사선으로 가로지르면서 통천문으로 불리는 제2 승가봉 바로 위를 지나가게 된다. 경씨는 “20여년간 자연휴식년제로 묶어 두었던 보현봉에 로프웨이 종착지가 들어서면 좁은 봉우리와 주변을 전망대와 안전시설로 도배해야 할 판”이라고 말했다.
환경부는 로프웨이를 타고 온 관광객은 원칙적으로 추가 산행을 허용하지 않고, 다시 로프웨이로 내려 보낼 방침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경씨는 “인공구조물과 데크 위로 슬리퍼와 반바지 차림의 관광객이 대거 몰려들면 주능선상의 다른 넓은 공터로의 이동을 막을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국립공원을 지키는 시민의 모임 윤주옥 사무처장은 “덕유산의 스키 리프트도 처음에는 도착점에서의 등산을 허용하지 않았으나 국립공원관리공단의 단속에도 불구하고 향적봉까지 없었던 탐방로가 금방 만들어졌다”고 지적했다.
로프웨이 찬성론자는 탐방객 일부를 로프웨이로 흡수해 환경피해를 줄일 수 있다고 주장한다. 고려대 변우혁 환경생태공학 교수는 “수직 탐방에서 수평 탐방으로 바꾸거나, 정상정복형이 아닌 정상조망형으로의 전환 등 다양한 탐방문화가 도입돼야 한다”면서 “케이블카는 정상조망형 탐방 문화를 위한 최적의 대안”이라고 말했다. 변 교수는 이어 “케이블카로 인한 직·간접적인 생태 영향은 등산로에 비해 오히려 작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케이블카가 샛길 탐방객을 흡수한다는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는 반론도 많다. 전남 해남 두륜산에서는 케이블카 설치 후 등산객 수는 예전과 다름없는 반면 새로운 탐방객은 급증했다.
보현봉으로 향하는 길에 만난 김모(48·서울 진관내동)씨는 “이런 경치를 보기 위해 땀을 흘리고, 자연에 대한 외경심을 느낄 기회를 가져야 한다”며 로프웨이를 반대한다고 말했다. 찬성 측에서는 장애인과 노약자를 위한 배려라고 한다는 질문에 그는 “그 점은 생각해 보지 못했다”고 답했다. 찬성론 가운데 비교적 설득력 있는 대목이다. 그러나 장애인 예산을 대폭 삭감하고 활동보조인도 축소한 정부가 케이블카 추진 명분으로 ‘장애인 접근권’을 거론하는 것은 논리의 비약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국립공원관리공단은 지난 3월 북한산 탐방객을 대상으로 로프웨이에 대한 여론조사를 실시했다. 탐방객의 62%가 ‘필요하다’, 27.4%가 ‘필요하지 않다’고 응답했다. 그러나 설문조사 실시장소가 정릉 입구와 도봉산 입구였다. 주능선과 주요 봉우리에서 만난 탐방객은 반대의견이 많았다. 반면 둘레길을 다니는 장년층이나 노인 사이에서는 찬성의견이 압도적이다. 로프웨이에 대한 여론조사 결과는 대상을 어느 부류로 삼을 것이냐에 따라 천차만별일 수밖에 없다.
임항 환경전문기자 hngl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