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경제 ‘판’이 바뀐다] 中·브라질 “기축통화 변경” 뜸들여

입력 2010-11-15 21:27


② 달러화 대안을 찾아라

‘달러 시대는 막을 내릴 것인가.’

지난주 끝난 서울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의 당면 과제는 ‘환율전쟁’ 해법이었다. 하지만 어느 새 세계 금융시장의 눈길은 ‘환율’ 너머 ‘달러 체제’로 향하고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갈수록 초라해지는 미국과 달러의 위상을 계속 지켜봐야 하느냐는 각국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미 서울 G20 정상회의 전후로 브라질 중국 등을 필두로 기축통화를 바꾸자는 주장이 공공연히 제기됐다. 여전히 달러의 대안이 될 만한 통화가 부상되지 않았다는 주장이 많지만 추세대로라면 중장기적으로 통화체제의 변화는 불가피하다는 데 대부분 의견이 일치하고 있다.

◇서울 G20은 환율전쟁터, 파리 G20은 기축통화 개편 전쟁터?=G20 회의 차기 의장국인 프랑스의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은 서울 정상회의 폐막 후 기자회견에서 “내년 회의에서 기축통화 문제를 주요 의제로 설정하겠다”고 강조했다.

달러화 개편 주장에 가장 적극적인 곳은 브라질 중국 등 신흥국이다. 기도 만테가 브라질 재무장관은 지난 12일 각국의 외환과 국가 간 금융거래를 달러화가 아닌 국제통화기금(IMF)의 특별인출권(SDR)을 기준으로 하자고 말했다. SDR은 IMF가 만든 가상의 기축통화로 달러(44%), 유로(34%), 엔(11%), 파운드(11%)를 일정 비율로 섞은 것인데 여기에 브라질 헤알화와 중국 위안화를 가치산정 통화에 포함시키자는 것이다.

중국의 후진타오 국가주석도 새 기축통화 시스템의 개편 필요성을 역설했으며 로버트 졸릭 세계은행 총재는 ‘변형된 금본위제 도입’을 거론했다. 반면 미국은 새 기축통화의 논의 자체에 무대응으로 일관하면서 논쟁에서 벗어나려 하고 있다.

내년 1월에는 IMF가 SDR 가치를 결정하는 통화를 추가할지 여부를 발표한다. 이어 프랑스 G20 정상회의가 열리게 된다. 내년 초부터 세계경제의 눈이 달러화 추방 여부에 쏠려 일대 논란을 예고하고 있다.

◇약해진 미국과 달러가 기축통화 변혁 자초=불과 10년 전만 해도 달러 통화체제를 바꾸자는 주장은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하지만 2000년대 중반 이후 미국이 초강대국으로서의 지위가 약화되고 글로벌 금융위기의 진앙지가 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15일 한국은행 자료를 보면 명목상 세계 국내총생산(GDP) 중 미국의 비중은 2000년 23.5%에서 2008년 20.6%로 축소된 반면 중국은 7.2%에서 11.4%로 확대됐다. 세계무역 비중도 미국은 2000년 21.9%에서 2008년 14.5%로 줄었고 유럽연합(EU)은 2003년부터 최대 교역 주체로 올라섰다.

달러 위상이 급격히 추락한 것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와 이후 추진된 양적완화 조치가 결정타가 됐다. 미 연방준비제도(Fed)는 금융위기 이후 경기부양을 위해 국채를 사들여 달러를 대량으로 시중에 푸는 방식을 취했다. 이러한 양적완화는 달러가치 약화로 이어졌고, 엔화 등 주요 선진국 통화는 물론 신흥국의 통화도 줄줄이 강세로 돌아섰다. 이에 따른 불만이 폭발하면서 달러체제 교체론이 주목받게 된 것이다.

◇기축통화 교체에는 10년 이상 걸릴 듯=하지만 달러가 단시일 내 뒷전으로 물러나기는 어려워 보인다. 신민영 LG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기축통화 교체론은 현재의 달러 약세로 인한 피해로 부각됐지만 솔직히 달러의 대안이 아직은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SDR 확대의 경우 현재 물량이 너무 적어 글로벌 통화로 자리잡기 어렵고 위안화는 중국의 자본시장 개방이 안 된 상태여서 제약이 많을 것이란 얘기다.

하지만 세계경제의 다극화가 촉진되고 경쟁통화의 입지가 계속 강화하는 점에 비춰 이르면 10년 후에는 통화체제의 변화가 가시화할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과거 기축통화였던 파운드화가 영국의 재정적자 과다로 신뢰도가 떨어지면서 달러화에 지위를 넘겨준 상황이 지금과 유사하다는 분석도 있다.

고세욱 기자 swko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