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원표구사 이효우 대표 “무늬와 글이 있는 옛 사람의 편지 매력적”

입력 2010-11-15 18:53


서울 낙원동에서 40년 넘게 전통 표구 작업을 해온 이효우(69) 낙원표구사 대표는 옛 사람들이 시나 편지를 쓰는 데 사용한 작은 종이인 시전지(詩箋紙) 수집가다. 전남 강진의 병풍을 제작하는 집안에서 자란 그는 10대 때 상경해 인사동 표구사에 들어가 일을 본격적으로 배웠다.

국내 몇 안 되는 장황(裝潢·비단이나 두꺼운 종이를 발라서 책이나 화첩, 족자 등을 꾸미는 일) 장인이자 고서화 수리·복원 전문가인 그가 시전지 수집을 시작한 것은 20년 전, 조선 후기 문인 이복현의 편지지를 보고 반하면서부터다.

“멋스러운 시전지에 붓글씨로 써내려간 글씨가 마음을 빼앗았어요. 요즘은 휴대전화 문자메시지가 의사소통의 주요 수단이지만 옛 사람들이 편지를 보낼 때 꽃무늬 등이 있는 시전지를 사용했으니 얼마나 낭만적인가요.”

이 대표가 지금까지 모은 시전지는 80여점. 자신이 일하는 표구사에 배접을 맡기기 위해 들어오는 것과 전국 고물상을 통해 구입한 것들이다. 그 가운데 40여점을 16일부터 23일까지 서울 견지동 동산방화랑에서 ‘예쁜 옛날 꽃편지 전’이라는 제목으로 선보인다.

연암 박지원, 추사 김정희, 석파 이하응 등이 편지와 시를 썼던 문화재급 시전지와 화훼, 인물, 산수 등을 새긴 시전지 원판, 그리고 봉투 등 16세기부터 19세기까지 다양한 시전지 관련 자료를 볼 수 있다. 병자호란 때 ‘삼전도’ 비문을 적은 죽남 오준의 꽃병과 책혈문(서책에 친 줄무늬)이 새겨진 시전지, 조선 후기 학자 원교 이광사의 매화무늬 편지지가 눈길을 끈다.

물결, 연꽃, 매화, 주전자, 감 등 각종 무늬가 장식된 시전지와 치자, 칡, 쑥, 팥, 수수 등 식물 즙으로 곱게 색을 내고 그 위에 풀벌레를 그려 넣은 색전지 등은 화려하지는 않지만 우아한 멋을 풍긴다.

이번 전시는 시전지의 사랑스러운 멋을 많은 사람에게 알리고픈 이 대표의 열망을 눈치 챈 사단법인 우리문화사랑(회장 송태호 전 문화체육부 장관)의 주선으로 기획됐다. 전시장인 동산방화랑은 이 대표가 젊은 시절 표구를 배운 곳이기도 해 감회가 남다르다.

이 대표는 “편지는 이메일로 대체되고 안부는 전화로 묻는 요즘 시속에 따라 옛 어른들의 시전지는 그저 몇몇 분의 애완품으로 남게 됐다”면서 “품격과 풍류가 녹아든 시전지를 통해 오늘에 되살릴 만한 고아한 취향을 찾아보는 기회가 되기 바란다”고 말했다. 입장료는 없으며 작품 판매는 하지 않는다(02-733-5877).

글·사진=이광형 선임기자 g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