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규홍의 식물 이야기] 감나무의 가을 메시지

입력 2010-11-15 18:01


바람이 쌀쌀해지면서 서둘러 잎을 덜어낸 나무들이 조심스레 익혀온 열매의 속살을 드러냈다. 결실의 계절임을 알리는 나무의 가을 메시지다. 귀하지 않은 열매가 없지만, 가을이면 감나무 열매만큼 눈에 들어오는 건 없지 싶다. 빈 가지에 새빨간 열매를 매단 감나무는 필경 우리가 볼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이 땅의 가을 풍경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감나무는 농촌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나무다. 흔한 탓에 존재감이 절실히 느껴지지 않는 나무이기도 하다. 그러나 낙엽이 지는 이 즈음에는 여느 나무 못지않게 그 존재감의 비중이 커지는 나무다.

사람들이 먹기 위해 털어내고 가지 끝에 남긴 나머지 열매를 까치밥이라고 한다. 먹을거리가 귀해지는 겨울을 나야 할 날짐승들을 위해 남겨둔 것이라는 의미다. 감은 그냥 털어내지 않고 일일이 따내야 한다. 자칫하면 터지기 쉽기 때문이다. 가느다란 가지 끝의 열매는 따내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내버려 둔 것이라고도 한다. 경위야 어찌 됐든 날짐승들에게는 요긴한 먹을거리가 되는 셈이고,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사람의 배려로 여겨질 수밖에 없다.

먹을거리로나 풍경으로나 열매인 감이 가장 요긴한 건 틀림없지만, 감나무는 쓰임새가 많은 나무다. 특히 목재로서의 쓰임새는 남다르다. 줄기의 재질이 단단한 데다, 잘 말린 뒤에 나타나는 검은 빛은 다른 목재에서 볼 수 없는 고급스러운 기품을 갖추어서다. 오래 전부터 귀한 가구를 만드는 고급 재료로 쓰인 이유다. 탄력성이 뛰어나다는 것도 감나무 목재의 특징이다. 이 같은 특징을 이용해서 화살촉이나 나무망치, 혹은 골프채의 헤드와 같이 단단하면서도 탄력성을 갖춰야 하는 기구의 재료로 쓰였다.

감나무의 다양한 쓰임새를 옛 문헌에서는 ‘오상(五常)’이라는 비유로 극찬했다. 잎이 넓어 글을 쓸 수 있으니 문(文)이고, 화살촉으로 쓸 수 있을 만큼 단단하니 무(武)가 되며, 열매 안팎의 빛이 한결같아 충(忠)이고, 이가 빠진 노인도 먹을 수 있으니 효(孝)이며, 가을 지나도 변함없이 열매가 달려 있으니 절(節)이라는 이야기다.

또 줄기의 검정, 잎의 초록, 꽃의 노랑, 열매의 빨강에 곶감으로 말렸을 때의 흰 색을 더해 오색(五色) 찬란한 나무로 극찬하기도 했다. 예쁘고 알찬 열매로 결실의 계절을 드러낸 감나무의 풍경이 살갑게 다가온다.

천리포수목원 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