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민간인 사찰 유죄 판결로 끝난 게 아니다

입력 2010-11-15 17:56

민간인 불법 사찰 혐의로 기소된 국무총리실 산하 공직윤리지원관실 이인규 전 지원관 등 4명에 대한 1심 재판에서 유죄판결이 내려졌다. 법원은 이들이 대통령 비방 동영상을 인터넷에 올린 업체 대표를 사찰하고 대표직 사임을 강요한 점 등이 인정된다며 대부분 실형을 선고했다. 직권을 남용해 국민 기본권을 침해한 죄질이 중하다는 이유였다. 국가기관의 조직적 불법행위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사건이 일단 단죄를 받았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지원관실 컴퓨터 하드디스크를 파기한 혐의 등으로 기소된 3명에 대해서는 22일 선고 공판이 열려 관련 피고인들의 1심 재판이 모두 마무리된다.

비록 법원에서 유죄가 인정됐지만 이 사건은 기소 단계에서부터 부실수사가 도마 위에 올라 지금까지 논란이 지속되고 있다. 증거 인멸 이후의 뒷북 압수수색, 사찰 배후 규명 실패 등으로 검찰은 ‘윗선’ 의혹을 제대로 밝히지 못했다. 검찰의 수사 의지를 비판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태산명동서일필(泰山鳴動鼠一匹)이었다.

더 큰 문제는 기소 이후에 불거졌다. ‘BH(청와대) 하명’ 메모와 ‘청와대 대포폰’ 등이 새롭게 폭로됐다. 증거 인멸 과정에서 청와대 행정관이 범죄 집단에서나 쓸 만한 대포폰을 지원관실 직원에게 제공한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청와대 연루 가능성이 제기됐지만 검찰은 요지부동이었다. 수사 결과 발표 당시에도 이 부분은 없었다. 축소·은폐 의혹 등 의문이 끊이지 않았다. 그럼에도 이귀남 법무부 장관은 “전부 검찰에서 조사했다. 더 이상 기소할 것이 없다”고 강변했다.

몸통은 건드리지 못하고 깃털만 뽑은 검찰 수사를 국민은 믿지 않는다. 야당은 물론 여당 일각에서도 재수사 요구가 거세다. 최근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의 조사에선 민간인 사찰 재수사에 찬성하는 의견이 59.2%인 것으로 나타났다. 검찰이 오불관언의 자세를 견지하며 무작정 덮으려 한다면 불신만 커질 뿐이다. 검찰이 재수사에 나서지 않으면 특별검사 임명 외에 다른 길이 없다. 불법 사찰 전모에 대한 실체적 진실은 반드시 규명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