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을 열며-이광형] 화상들 뿔났다

입력 2010-11-15 17:50


요즘 장안의 화제가 되고 있는 SBS TV 수목드라마 ‘대물’에는 그림을 전시·판매하는 갤러리가 등장한다. 갤러리 여주인은 그림을 매개로 정계 유력 인사들과 접촉하고 관계를 맺는 등 마치 유한마담처럼 그려지고 있다. 집권 여당 대표가 갤러리 여주인의 숨겨진 아버지로 드러나고, 대권을 노리는 여당 유력 주자가 이에 연루되는 등 정치권력의 음모가 갤러리를 배경으로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드라마는 한 걸음 더 나아가 갤러리가 정치권 비자금의 온상인 것처럼 묘사하고 있다. 실력자들이 이 갤러리를 통해 그림을 구입하지만 사실은 검은돈을 세탁하기 위한 수단으로 미술품을 활용하고 있는 모습이다. 한 젊은 검사가 수사에 나서지만 막강한 권력을 등에 업은 갤러리 여주인의 술수와 이중장부로 인해 수사는 무위로 돌아가고 만다.

그림을 둘러싼 음모는 수사 검사의 아버지에 대한 청부살인으로 이어지고 마침내 대통령에게까지 확대되는 모양새다. 드라마는 지난 몇 년 동안 미술계에서 일어난 불미스런 사건들을 통해 모티브를 얻었는지 모르겠다. 신정아 큐레이터의 학력위조 및 권력과의 스캔들, ‘행복한 눈물’로 불거진 삼성 비자금, ‘학동마을’과 관련된 국세청 그림로비 등 일련의 사건 중심에는 미술품이 있었으니까.

하지만 미술계 인사들은 불만이 많다. 드라마 작가가 실상을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선무당 사람 잡듯이’ 갤러리를 소재로 하고 있다는 것이다. 드라마처럼 권력 주변을 오가며 그림을 판매하는 갤러리가 없다고는 못하겠지만 대부분 화랑들이 문화사업을 한다는 자부심과 함께 작가를 키우고 해외에 한국미술을 알리기 위해 힘쓰는 것에 대해서는 알지 못하고 시청자들에게 나쁜 이미지만 심어준다는 것이다.

갤러리를 운영하거나 그림을 사고파는 화상(畵商)들은 요즘 울상이다. 미술시장이 최악의 불황에 빠져 그림이 팔리지 않는다고 하소연한다. 그런데도 최근 몇 년 사이에 국세청의 세무조사가 전격적으로 실시되는 바람에 미술계 전체가 완전히 녹다운될 지경이라고 말한다. ‘소득 있는 곳에 세금 있다’는 국세청의 입장은 이해하지만 세무조사가 그림값에만 초점을 맞춰 진행된다는 것이다.

얼마 전 한 화랑이 세무조사를 받았다고 한다. 그림을 팔고 남은 수익이야 자료를 통해 드러났지만 누구의 그림이 얼마에 팔렸다는 언론 보도 등을 근거로 작품당 몇 천 만원, 몇 억원씩 남는 장사라는 조사원의 인식에 적잖이 당황했다고 화랑주는 전했다. 그림을 팔면 절반은 작가에게 지불하고 전시 도록 제작비와 인건비 및 부대비용을 제외하면 잘해야 본전인이라는 게 그들의 주장이다.

화상들이 최근 목소리를 높이는 또 한 가지 일이 있다. 내년 1월 1일부터 시행예정인 미술품 양도세 부과 법안을 철회하라는 것이다. 2008년 마련된 이 법안은 작고 작가 중 6000만원 이상의 미술품을 양도할 경우 매매차익에 대해 20%를 과세하는 내용이다. 이 법안이 시행될 경우 그림을 사는 컬렉터가 줄어들어 가뜩이나 침체된 미술시장이 더욱 위축될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한국화랑협회 등 미술 관련 단체들은 반대운동을 벌이고 있다. 이들은 “지난해 말 기준으로 미술품 양도소득세 예상액은 약 10억원에 불과한 만큼 징수효과가 미미하고, 세금이 부과되면 음성적인 거래가 오히려 늘어나 부작용이 심해질 것이며, 주식 양도차익도 과세를 하지 않는데 미술품 양도세는 형평성에 어긋나고 시기적으로도 이르다”고 주장한다.

화랑협회는 미술품 양도세 철회를 위해 국회 등 각계에 부당성을 담은 자료를 전달하고 드라마 대물에 대해서도 항의서한을 보낼 예정이다. 자신들의 이익에 반하거나 이미지가 손상될 경우 가만히 있지 않고 목소리를 내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돌아보면 이들의 잘못도 없지 않다. 투명하지 못한 미술품 거래 관행과 주먹구구식 화랑 운영의 구태를 청산하지 않는다면 목소리는 설득력을 얻지 못할 것이다.

이광형 문화과학부선임기자 g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