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현대 선구적 추상미술 작품 한눈에… ‘유영국의 1950년대와 1세대 모더니스트들’전

입력 2010-11-14 17:46


유영국(1916∼2002) 김환기(1913∼74) 이중섭(1916∼56) 장욱진(1918∼90) 백영수(1922∼). 한국 근현대 화단을 대표하는 이들 5명의 공통점은 무엇인가. 해방 직후 어수선하던 1947년, 김환기 유영국 장욱진 등이 “새로운 사실(寫實)을 표방한다”는 기치로 ‘신사실파’를 결성했고 이후 이중섭과 백영수가 참여했다. 이들은 몇 차례 동인전을 열며 한국 최초의 추상미술그룹으로 발전해갔다.

서울 평창동 가나아트센터에서 다음달 5일까지 열리는 ‘유영국의 1950년대와 1세대 모더니스트들’은 해방과 전쟁, 그리고 이데올로기의 대립이라는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서 우리나라 추상미술의 싹을 틔웠던 신사실파의 작품을 한데 모은 전시다. 60여점의 출품작 가운데 ‘한국 추상미술의 선구자’로 평가받는 유영국의 미공개작 5점이 나와 눈길을 끈다.

‘53 KUGG’라는 서명이 들어 있어 1953년 작품으로 추정되는 3점과 비슷한 시기의 그림 2점이다. 등대와 배, 나무 등을 소재로 한 듯한 미발표 유작은 구상과 비구상의 중간에 놓여 있는 그림으로 한국 1세대 모더니스트의 예술세계를 보여준다. 곡물 포대를 활용한 것 같은 캔버스는 전쟁을 피해 고향인 경북 울진에서 어업과 양조업 등으로 생계를 꾸리던 작가의 상황을 떠올리게 한다.

이중섭은 전쟁의 상흔을 치유하려는 듯 가족을 향한 애틋한 서정을 화면에 그려냈다. 이번에 출품된 ‘길 떠나는 가족’ ‘청기와’ ‘사계’ 등에서는 혼란스럽고 피폐한 현실을 예술을 통해 순화시키고 마음 속 안식을 찾고자 하는 열망을 엿볼 수 있다. ‘배와 고기’ ‘어린이’ 등 동심의 세계를 표현한 장욱진의 작품들도 어렵고 힘든 상황을 이겨내려는 의지가 반영되기는 마찬가지다.

김환기는 한국적 정서가 깃든 정겨운 소재들을 모티브로 삼아 작업하면서 한국 추상미술을 프랑스 등 유럽 화단에 널리 알렸다. ‘달과 매화’ ‘푸른 풍경’ 등 출품작을 통해 작가가 평생 동안 추구했던 삶과 예술의 정신세계를 되새길 수 있다.

신사실파 동인 중 유일한 생존 작가인 백영수는 프랑스에서 주로 활동했던 탓에 다른 작가들에 비해 덜 알려져 있다. 까까머리 소년과 어머니, 나무, 새, 초가, 꽃 등을 소박하고 따뜻하게 그리는 그는 고령에도 붓을 놓지 않고 열정을 불태운다. 별이 총총히 빛나는 푸른 밤하늘을 그린 ‘밤하늘’(2002)에서 보여지는 모던함은 젊은 작가와 비교해도 뒤지지 않는다.

서로 영향을 주고받았던 터라 각자의 개성이 느껴지면서도 어딘가 모르게 닮은 듯한 그림들이다. 이인범 상명대 조형예술학부 교수는 “예술의 세계 안에서 이들 작가들이 어떤 점에서 영향을 주고 받았는지, 6·25전쟁이 그들에게 드리운 흔적과 트라우마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이런 경험이 절정기의 작품에 어떻게 투영됐는지 확인할 수 있는 기회”라고 말했다(02-720-1020).

이광형 선임기자 g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