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외곬으로 가는 北 경수로 건설
입력 2010-11-14 19:21
북한이 영변 핵시설에 실험용 경수로를 건설중이라고 미국 로스앨러모스 핵연구소장을 지낸 시그프리드 헤커 박사가 13일 말했다. 최근 북한을 방문한 그는 경수로 발전용량이 25∼30㎿이며 건설을 막 시작해 수년 뒤 완성된다고 전해들었다 한다.
북한 경수로 건설은 전부터 조짐이 있었다. 지난해 4월 “경수로 발전소 건설을 결정했다”는 외무성 대변인 성명이 나왔고 올해 9월에는 미국의 한 싱크탱크가 영변 핵시설 지역에 굴착공사를 하는 것으로 보이는 위성사진을 공개했다. 북한이 헤커 박사에게 일부러 경수로 건설을 흘린 것은 핵무기 원료가 될 고농축 우라늄을 생산하겠다는 의지를 알려 미국을 협상 테이블에 끌어내려는 의도일 것이다. 하지만 단순한 시위나 협상용만은 아닌 것 같다.
북한 노동신문이 지난 4월 “100% 우리의 원료와 기술에 의거한 경수로가 힘차게 돌아가는 것을 목격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한 것으로 미뤄 북한이 경수로 건설에 필요한 첨단 기술을 개발했을 가능성이 있다. 이제 기존 플루토늄 방식에 더해 우라늄 농축방식에 의한 핵물질 제조에까지 북한의 손이 뻗쳤다고 봐야 한다. 당장은 미국에 협상을 촉구하는 수단이지만 장기적으로는 우라늄 농축을 완성하는데 더 비중이 있을 것이다.
북한은 6자회담을 채근하지만 미국은 진정성이 없다고 판단하여 응하지 않고 있다. 경수로 건설은 북한의 핵 폐기 전망을 더욱 어둡게 한다. 앞으로도 이른바 김정은의 영도력을 입증하기 위한 과시적 조치들이 계속될 것이다. 경수로 건설을 서방에 흘린 것도 이같은 상황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14일 일본 아사히신문 인터뷰에서 남북 정상회담 추진과 관련해 “국내정치적 목적으로 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당연한 원칙이다. 역대 정권의 두 차례 정상회담은 모두 국내정치적 목적 때문에 빛을 잃었다. 북한의 핵, 독재, 인권 어느 것도 해결하지 못했다. 행여 경수로 건설이 정상회담 추진 명분이 되는 일이 없기 바란다. 북한이 미국과의 대화를 통한 핵문제 해결을 일관되게 주장하는 상황에서 이 대통령이 나선다고 달라질 건 없다. 국제 제재를 통한 압박이라는 북핵 해결의 기본틀을 바꿔야 할 이유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