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최정욱] 한·미 FTA 유감

입력 2010-11-14 17:46

“백인은 헤아릴 수 없이 수많은 약속을 했다. 그러나 지킨 것은 단 하나다. 우리 땅을 먹는다고 약속했고, 우리의 땅을 먹었다.”

19세기 아메리카 인디언 ‘붉은 구름’이 남긴 이 말은 미국의 서부개척사를 한마디로 요약해 준다. 1620년 영국 청교도들 이후 북아메리카에 밀려든 이민자들은 토착민인 인디언들의 입장에서는 재앙이었다. 백인들은 서부개척 초기 주로 대평원의 들소 가죽을 얻기 위해, 이후엔 금을 캐기 위해 인디언들을 내몰았다. 처음 채굴권 보장 시 보상을 약속한 우호적 협상은 곧 척박한 정착지로 이주를 명하는 강압적 요구로 바뀌었고, 거부하면 무력보복이 이어졌다.

미국의 쇠고기 전면 수입허용 요구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추가협상이 결렬됐다. 하지만 이는 미국 측이 자동차 부문에서 보다 많은 것을 얻어내기 위한 카드일 가능성이 크다.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도 지난 13일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폐막 기자회견에서 “자동차가 쇠고기보다 더 걱정거리”라면서 “미국에는 (연간) 40만대의 한국차가 들어오지만 한국에는 (미국차) 수천대가 수입되는 게 고작”이라고 지적했다.

실제 한국수입자동차협회에 따르면 올 1∼10월 7만3000여대가 팔린 국내 수입차 시장에서 미국차 점유율은 8.4%로 유럽차(65.9%)나 일본차(25.7%)에 비해 한참 떨어진다. 수입차 판매량 10대 브랜드에도 미국은 포드만이 7위(3413대)에 겨우 이름을 올렸다. 차종이 다양한 독일 등 유럽차와 일본차에 비해 GM, 포드, 크라이슬러 등 미국 ‘빅3’ 차량은 대형차 위주라서 선택 폭이 좁고 연비나 편의사양도 국산차보다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게 업계 설명이다.

하지만 미국차는 한·미 FTA가 발효되면 현행 8%의 관세가 사라지고 세제 변경으로 자동차 가격이 지금보다 10% 이상 내려가는 게 확정된 상황이다. 포드 토러스(3500㏄)의 경우 국산 고급 중형차(2400㏄)와 배기량이 큼에도 가격은 비슷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게다가 우리 정부는 추가협상에서 2015년까지 미국차의 연비 규제 등을 면제해 주기로 해 소형차 등보다 다양한 차종이 국내에 들어올 수 있도록 양보한 셈이 됐다.

이번 한·미 FTA 추가협상은 일단 결렬됐다. 하지만 옛 영광을 재현하려는 빅3의 이익을 대변한 미국 정부의 추가 양보 요구는 계속될 전망이다. 미국차의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낙관적 기대만으론 국내 시장을 지켜내기가 어려울 수도 있다.

최정욱 차장 jwcho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