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드라마 ‘막장’ 많다고? 실제론 현실이 훨씬 더 심각!
입력 2010-11-14 17:31
어느 순간부터 드라마나 연극보다 현실에서 접하는 사건 사고가 더 자극적이고 황당무계해졌다. 소위 ‘막장 드라마’가 등장하는 것은 현실에서 접하는 사건이 역치를 높였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럼 연극은 관객에게 무엇을 보여줄 수 있을까.
◇이형사님 수사법
극단 이와삼의 창작 연극 ‘이형사님 수사법’은 연쇄살인사건을 수사하는 강남경찰서 형사1반을 무대로 한다. 말도 안 되는 사건을 말도 안 되는 방법으로 해결해 나가는 게 축이다. 경찰들은 증거사진에 ‘뽀샵질’을 하고, 수사 배경음악으로는 아이돌그룹의 음악을 틀어댄다. 아이돌그룹 공연을 보러가려고 돼지족발 뼈를 증거물로 만들어버리는 게 이들이다. 그러면서도 단순살인사건을 연쇄살인사건으로 엮어보겠다고 전의를 불태운다.
이들의 황당한 수사가 실없는 농담이 되지 않는 이유는 수사방법보다 범죄가 더 어이없기 때문이다. 사건의 범인은 시인을 자처하며 운둔하는 오씨다. 전형적인 ‘루저’의 모습인 오씨는 다른 사람 손끝 하나 못 건드릴 것처럼 나약해 보인다. 하지만 그는 연쇄살인범이다. 살인하는 이유는 피해자들의 키가 자신보다 크다는 것. 자신을 내려다보는 게 싫어서다. 그래서 자기보다 키가 큰 여자들을 죽이고 발목을 잘랐다. 이쯤 되면 수사법이 어이없는지 사이코패스의 범행동기가 황당한지 구분이 안 된다. 그런데 우리는 뉴스에서 오씨 같은 사이코패스를 이미 봤다. 형사들의 수사방법은 완전 허구지만 사건은 현실이다.
21세기에 일어날 법한 사건에 비현실적인 수사법을 덧댐으로써 이 연극은 관객으로 하여금 현실 인식에 대한 관점을 환기시킨다. 과연 그런 범죄를 우리가 이해하고 용납할 수 있는지, 나아가 어떻게 그들에게 다가서야 하는지까지.
주제의 무게에 비해 극을 풀어나가는 톤은 무겁지 않다. 시종 웃을 수 있을 정도로 트렌디한 개그가 곳곳에 포진돼 있고, 이를 풀어나가는 배우들의 내공도 만만치 않다. 12월 12일까지 대학로문화공간 이다 2관(02-762-0010).
◇아침드라마
연출가 박근형이 직접 극본을 쓰고 연출을 한 ‘아침드라마’는 제목처럼 요즘 아침드라마의 설정을 차용하고 있다. 아침드라마의 의미는 황당하고 비현실적인 것이라는 말과 같은 의미가 된다.
몇 가지 이야기가 나열된다. 아버지의 사업이 망하고 디자이너를 꿈꾸다 백화점 구둣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게 되는 한 여자가 있다. 어느 날 백화점 사장 아들이 나타나 둘은 사랑에 빠진다. 부모의 반대를 이겨내고 아기를 내세워 결혼한다. 하지만 얼마 안 가 여자는 동료직원과 불륜에 빠지고 이를 알게 된 남편은 교통사고로 숨진다. 전형적인 아침드라마다.
연쇄방화범에 의해 가족을 잃은 남자의 이야기도 있다. 기억을 잃은 그는 조각을 맞추며 어머니, 아버지에 대한 생각을 더듬는다. 해체된 가족을 되돌리려 하지만 오히려 상황은 점점 꼬이고 혼란스러워진다.
이런 얘기를 손에 땀을 쥐고 보라는 게 이 연극의 목표는 아니다. 연극은 관객에게 묻는다. 당신이 지금 보는 것보다 더 기가 막히는 게 당신 삶 아니냐고. 그런데 왜 드라마에는 그렇게 몰입하면서 당신의 삶은 외면하느냐고. TV의 아침드라마가 현실에서 이루지 못한 욕망을 대리만족시켜 준다면 연극 ‘아침드라마’는 현실을 직시하고 ‘당신의 드라마에 집중하라’는 메시지를 던진다. 28일까지 게릴라극장(02-6012-2845).
김준엽 기자 snoop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