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려 쓴 것? 양심의 문제? 드라마 표절 논란 계속… 외국 작품과 배경·대사 같아 의혹-해명 잇따라
입력 2010-11-14 17:39
요즘 드라마들의 일부 설정이 외국 드라마나 소설과 겹치면서 표절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 6일 방송된 KBS 2TV ‘드라마 스페셜-달팽이 고시원’은 일본 소설 ‘와세다 1.5평 청춘기’와 비슷하다는 의혹이 제기됐고, 현재 방영 중인 SBS ‘닥터챔프’는 미국 드라마 ‘하우스’와 주인공의 설정이 같다는 의혹을 받았다. 제작진은 ‘우연의 일치’ 혹은 ‘부분적 차용’이라고 항변하지만, 시청자들은 어디서 본 듯한 내용에 식상함을 지적한다.
‘달팽이 고시원’은 만년 고시생에 잔소리가 많은 아저씨, 학교를 바라보기만 하고 다니지 않는 휴학생, 방송국 PD 준비생 등 남성만 모여 사는 고시원에 한 여성이 입주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드라마는 잔소리꾼 아저씨가 공용 화장실 하수구를 막히게 하는 머리카락의 주인을 잘못 짚는 이야기로 시작한다. 이 에피소드는 ‘와세다 1.5평 청춘기’에 그대로 등장한다. 또 학교를 바라보는 것만으로 출석을 대신한다는 휴학생의 대사도 소설 속에서 발견된다.
드라마가 방영된 후 인터넷에서 소설과의 유사성이 문제되자, 함영훈 KBS PD는 “기본적으로는 수년간 고시원 생활을 해온 친구를 두고 있는 작가의 개인적 경험에서 비롯된 것”이라면서도 “작가가 와세다 1.5평 청춘기를 재미있게 읽고 문제로 지적된 대사를 메모해 놓았다가 이 드라마에서 휴학생의 대사로 차용했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차용은 법적 문제를 떠나 작가 양심의 문제라고 말한다. 작가는 특정 창작물을 차용하는 것을 최대한 피하고 자신만의 아이디어를 만들려고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상학 한국시나리오작가협회 이사장은 “다른 사람의 창작물을 따 쓰면서 미안함을 느끼지 않는 풍토가 문제다. 아무리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지만, 일부라도 남의 것을 그대로 가져오고 이를 너그럽게 봐주는 분위기는 창작 정신을 해칠 수 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한편 ‘달팽이 고시원’을 쓴 윤지희 작가의 이전 작품 ‘위대한 계춘빈’(7월 10일 방송)은 작가의 상상력이 우연히 일치해 ‘표절’ 의혹을 받은 경우다. 드라마에서 주인공이 의사고, 그의 병원은 월세도 못내는 척박한 사무소라는 점, 괴짜 환자들이 나오는 점, 간판의 글씨를 교묘하게 바꾸는 에피소드 등이 일본 소설 ‘공중그네’와 비슷하다는 것이다. 또한 여러 도화지를 이어 붙여서 하트를 만드는 점은 일본 공익 광고와 유사하다. 하지만 제작진은 “이는 단순히 작가적 상상력의 우연한 일치에 지나지 않는다”고 해명했다.
이에 대해 경력 15년차의 중진 작가는 “같은 작가의 작품에서 표절 의혹이 이어지는 것은 문제다. 또 비슷한 작품이 이미 나와 있는 경우라면, 제작진이 사전에 파악하고 최대한 새로운 내용으로 바꿔 논란을 피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선희 기자 sun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