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년 만에 개인전 여는… 故 이응로 화백 부인 박인경씨
입력 2010-11-12 18:48
“이제야 비로소 고암 선생으로부터 해방된 기분이에요. 붓질도 한결 자유로워지고 그림 그리는 일이 너무 행복해요.”
한글을 소재로 한 문자추상을 개척한 고암 이응로(1904∼89) 화백의 부인 박인경(84·사진)씨. 서울 인사동 공아트스페이스에서 15년 만에 개인전을 여는 그의 입가에는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백발이 성성한 나이에도 불구하고 자신만의 조형세계를 펼쳐내는 것이 즐겁기 때문이다.
이화여대 동양화과 1회 졸업생인 그는 고암과 결혼 후 일본과 독일에서 부부전을 갖고 프랑스 파리에 거주하면서 동양미술학교를 운영하는 등 왕성한 활동을 벌였다. 그러나 1967년 고암이 동백림사건으로 한국에 강제 소환돼 옥고를 치르면서 마음고생이 많았다. 고암 사후에는 서울 평창동에 이응로미술관을 건립해 남편의 예술세계를 널리 알리는 데 힘썼다.
그런 중에도 끊임없이 작업에 몰두해 간간이 전시를 열기도 했으나 고암의 그늘에 가려 제대로 빛을 보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전에는 일부러 고암을 피해 가려고 애를 썼어요. 남편과 사별한 지 20년이 되니 이제 마음이 편안해졌어요. 제 방식대로 고암을 이어가는 작업을 하려고 해요.”
‘나무·숲 이야기’라는 제목을 붙인 이번 전시에 그는 파리 작업실의 식탁에 앉으면 내려다보이는 풍경을 그린 ‘센 강’, 자택 정원 풍경을 화면에 옮긴 ‘숲’ ‘비’ ‘바람’ 등 수묵화 20여점을 선보인다. 전시장 벽면을 가득 채운 대작에 먹과 붓의 놀림을 자유자재로 구사한 노익장이 놀랍다.
자연을 추상적으로 그린 작품들이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한글을 소재로 했다는 점에서 고암의 예술혼과 일맥상통한다. “기역 니은 디귿 등 한글을 계속 그리다 보면 숲이 되고 강이 되고 바람이 돼요. 글자와 글자 사이에는 여백이 자연적으로 생기고요. 한글 기호가 그만큼 예술적이라는 얘기입니다.”
개인적으로 운영하던 이응로미술관이 2007년 대전으로 이전해 대전시립미술관으로 바뀌면서 명예관장을 맡고 있는 박씨는 “요즘 사람들은 고암 선생을 잘 모르는 것 같다”면서 “한글의 아름다움을 문자추상으로 승화시킨 고인의 예술세계가 오래도록 기억되기 바란다”고 소망했다. 전시는 20일까지(02-735-9938).
글·사진=이광형 선임기자 g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