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G20 정상회의 폐막] 美·中·獨·佛·日 정상들 개별 성적표
입력 2010-11-12 22:23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한미 FTA 합의 끝내 못해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이번 정상회의에서 공적(公敵)이었다. 경상수지목표제 도입 추진과 양적완화조치로 유럽은 물론 브라질 등 신흥국에게 공격을 당했다. 위안화 절상을 두고 중국과는 팽팽한 신경전을 펼쳤다.
겉으로 보면 오바마 대통령은 ‘빈 손’으로 돌아간 것처럼 보인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은 실패했고, 경상수지목표제도 사실상 물 건너갔다.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과의 양자회담에서 무역 불균형 해소를 위해 위안화 절상을 요구했지만 중국을 설득하는 데 실패했다.
하지만 중간선거 패배로 인한 국내의 위상 추락을 국제무대를 통해 어느 정도 회복했다는 측면도 없지 않다. 오바마 대통령은 12일 정상회의 폐막 뒤 가진 기자회견에서 자신의 위상이 약화된 게 아니냐는 질문에 “세계 지도자, 특히 아시아의 지도자들은 경제, 안보 문제와 관련해 (나와) 함께 일하기를 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 대통령이 없는 G20 정상회의는 상상할 수 없을 것’이라는 자심감이 묻어나는 말투다. 경상수지목표제 역시 정상회의 시작 전에 이미 도입이 어려울 것으로 판단하고, 이를 G20 회원국들의 양적 완화조치 비판을 무디게 하는 ‘물타기’ 용으로 활용하지 않았느냐는 분석도 있다.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 환율절상 압력에 외교력 발휘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은 미국의 양적완화 조치에 문제를 제기,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요구에 물러서지 않으며 G2(주요 2개국)의 힘을 과시했다. 미국의 2차 양적완화 조치와 중국 위안화 절상 문제를 놓고 첨예하게 대립하면서 11일 열린 양국 간 회담은 ‘환율 담판’이란 이름으로 전 세계의 이목을 끌었다. 후 주석은 “세계경제에 우려를 불러일으킨 미국의 양적완화 정책을 예의 주시한다”는 입장을 전달하면서 “미국은 신흥국과 개발도상국의 이익을 감안했어야 한다”고 비판했다고 중국 국영 CCTV가 보도했다.
후 주석은 같은 날 이명박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남북문제, 한·중 관계, 서울 G20 정상회의 등에 관해 대화를 나눴다. 이 자리에서 후 주석은 “남북관계의 개선이 한반도 평화 안정에 중요하다”며 남북관계 개선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일본과의 신경전에서도 지지 않았다. 일본의 간 나오토 총리가 우회적으로 양자회담을 제의했지만 결국 회담은 이뤄지지 않았다. 후 주석이 미국의 양적완화 조치에 반발하면서 독일 등 유럽 선진국, 브라질 등 신흥국과 각각 전략적 동반관계를 보인 것은 국제 외교무대에서 중국의 입김이 강화되고 있는 측면을 보여준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경상수지 관리제 반대 관철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12일 서울 회의에서 경상수지 흑자 및 적자 폭을 4%로 제한하자는 제안이 선언문에서 제외된 것에 대해 환영했다.
메르켈 총리는 지난 11일 이명박 대통령과의 양국 정상회담에서 “미국이 국채를 많이 늘리면서 통화량을 확장하는 데 대해 우려하고 있다”며 경상수지 가이드라인을 환율 전쟁과 불균형 무역의 해법으로 삼겠다는 미국, 영국 등의 방침에 부정적 견해를 보였다.
메르켈 총리는 같은 날 서울 하얏트 호텔에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가진 회담에서도 경상수지 목표치 설정에 반대한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경상수지 목표치가 설정되면 중국에 이어 세계 2위 수출 대국인 독일이 큰 타격을 입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는 미국과 중국을 동시에 공격함으로써 독일의 입장을 국제사회에 확실하게 인식시키는 성과를 거둔 셈이다.
그는 또 이화여대에서 명예 정치학 박사학위를 수여받고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와 면담하는 등 정상회의 밖에서도 활발한 행보를 보여 주목을 받았다. 이화여대에서는 “한국은 경제성장과 민주주의 정착에 모두 성공한 모범적인 국가”라고 강조했다. 그는 박 전 대표와의 만남에서 양국 간 외교·경제 교류방안 등에 관해 의견을 교환했다.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 발언 자제하고 듣는 자세 견지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은 차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의장으로 어깨가 무겁다.
사르코지 대통령은 국내 일정 때문에 정상들 가운데 가장 늦은 12일 새벽 한국 땅을 밟았다. 한국 체류기간이 다른 정상들에 비해 짧았던 만큼 활동은 두드러지지 않았다. 또한 이번 서울회의에서 발언을 자제하고 주로 듣는 자세를 견지했다고 한다.
프랑스는 무역수지 적자에 허덕이고 있기 때문에 불균형을 개선하자는 미국 주장에 찬성하는 입장이다. 무역수지 흑자국인 독일과 중국에 대해 비난 일색으로 접근한다면 향후 G20을 개최하는 데 역효과가 생길 것이 뻔하다. 차기 의장국으로서 향후 G20의 성공을 위해서는 협상 중개자의 역할을 충실하게 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그가 이번 회의에서 귀를 열고 입을 닫은 이유로 보인다.
그러나 사르코지 대통령은 내년 프랑스에서 열리는 G20 회의를 2년 후 대선의 발판으로 삼고 싶어하는 야심을 가지고 있다. 또 돌출 행동으로 외교가에서 악명이 높다. 그가 정치적 야심을 위해 G20을 활용할 경우 가까스로 자리잡기 시작한 G20 체제에 위기가 올 수 있다는 우려도 존재한다.
간 나오토 일본 총리… 양자 정상회담 한번도 못가져
간 나오토 일본 총리는 서울 G20 회의에서 별로 얻은 것 없이 돌아갈 형편이다. 각국 정상이 바쁜 일정에도 숨가쁘게 양자회담을 벌이는 동안 간 총리는 단 한 건의 양자회담도 갖지 못했다. 지난 11일 비즈니스 서밋 무역·투자 분과위 라운드테이블에 참석, 환율 문제에 대한 의견을 편 게 그나마 눈에 띄는 활동이었다.
간 총리는 이 자리에서 “금융위기를 극복한 뒤 세계경제가 성장하고 있지만 새로운 무역장벽이 생기고 있다”며 “환율 문제에 서로 협력할 필요가 있고 각국이 구체적인 행동강령을 공유해야 한다”고 말했다.
간 총리로서는 엎친 데 덮친 격으로 13일 일본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 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서도 주목을 끌지 못할 상황이다. 직전에 서울 G20 회의가 개최됐기 때문이다.
이번 APEC 회의는 15년 만에 일본에서 열리고 21개국 정상이 참여하는 대규모 행사여서 일본은 내심 기대가 컸다. 하지만 외환시장 개입이나 글로벌 불균형 해소방안 등 최근 현안으로 떠오른 의제가 대부분 서울회의에서 걸러져 김이 빠져버렸다.
이성규 기자, 이용상 기자, 이도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