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재참사 포항 요양원 가보니… 거동 힘든 중증환자 많아 피해 커

입력 2010-11-12 18:16


“같은 방에서 잠자던 할매들이 다 죽고, 나만 살았단 말이가?”

12일 새벽 불이 나 10명이 숨지고 17명이 부상한 경북 포항시 인덕노인요양원에서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은 김송이(88) 할머니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김 할머니는 10명이 숨진 1층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았다.

잠이 안 와서 침대에 누워 있던 김 할머니는 화재 직후 매캐한 냄새가 나고 목이 따가워 근무 중인 요양보호사 최모(63)씨를 불렀고, 최씨가 김 할머니를 밖으로 끌어내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2층에 다른 할머니 2명과 같은 방에 있다 소방대원에게 구조된 조연화(77) 할머니는 “시커먼 연기로 앞을 볼 수 없었고, 숨을 제대로 쉬지 못해 죽을 것만 같았다”며 “다리가 불편해 걸을 수 없어 방과 거실 여기저기를 기어다니다 소방관이 들어와 나를 업고 밖으로 나갔다”며 당시의 아찔했던 상황을 전했다.

김분란(84) 할머니의 시신이 안치된 포항 세명기독병원에서는 아침 일찍 비보를 듣고 달려온 유족들이 오열했다. 부산에 사는 김 할머니의 장남 이재우(63)씨는 “1년 동안의 일본 출장을 마치고 11일 부산에 도착했고 12일 어머니를 찾아뵐 계획이었는데 이런 어처구니없는 사고가 났다”며 허탈해했다.

이날 화재로 숨진 장후불(75) 할머니의 아들 김성대(53)씨는 “5년 전부터 치매를 앓기 시작한 어머니를 1년 전 이곳으로 모셨는데 평소 자주 찾아뵙지 못한 게 한이 된다”고 말했다.

사고가 난 요양원은 외부에서 보면 화재 흔적을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멀쩡했다. 화재가 발생한 사무실은 전소됐으나 노인들이 실제 거주하는 방에는 불길이 번지지 않았다.

그럼에도 큰 인명피해가 발생한 것은 요양원이 혼자 거동하기 어려운 중증의 치매 및 중풍 환자들을 수용하면서 화재경보기나 스프링클러 등 기본적인 화재 대응 장비조차 갖추지 않았기 때문이다.

불이 난 요양원 건물은 1973년 포항 남구 제철동 동사무소로 준공돼 사용하다 동사무소가 이전한 뒤 2006년 이모(65)씨가 인수, 리모델링을 거쳐 이듬해 1월부터 요양원으로 운영해 왔다. 건물 연면적이 378㎡로 소방법에서는 400㎡ 이상의 건물에 대해서만 화재경보기를 설치하도록 돼 있다.

소방 관계자는 “사고가 난 요양원은 소방법 규정상 소화기와 가스누설경보기, 비상구와 유도등 설치만 갖추면 되기 때문에 소방법규를 위반하지는 않았다”고 밝혔다. 포항 남부소방서는 지난해 10월 이 요양원에 대해 특별소방점검을 했지만 ‘이상없음’ 판정을 내렸다.

전국 곳곳에서 노인요양 시설이 우후죽순 격으로 들어서고 있는 상황을 감안할 때 중증 환자들을 수용하는 시설에 대해서는 규모에 관계없이 소방안전 시설을 강화하는 등의 조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요양원 근무자에 의한 최초 화재 발견 후 두 단계를 거쳐 119에 신고가 접수되는 등 신고가 지연된 것도 피해가 커진 원인 중 하나다.

최초 목격자인 요양보호사 최씨가 휴대전화를 갖고 있었지만 당황한 나머지 119에 신고하는 대신 인근 포스코 기술연구소 경비실로 직접 뛰어가 신고해줄 것을 부탁했다. 경비실은 포스코 자체 소방대에 신고했다. 이어 포스코 자체 소방대가 현장에 출동했지만 자체적으로 진화할 상황이 못 되자 다시 포항남부소방서 상황실로 연락하면서 화재 신고가 9분 정도 지연됐다.

포항=김재산 기자 jskimkb@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