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의 삶 형상화… 전태일 40주기 ‘서울과 노동시’ 출간

입력 2010-11-12 17:25


서울은 어떤 얼굴의 도시인가. 서울에 가면 밥이 나온다며 사람들이 어린 아이 손목을 잡고 커다란 짐을 이고지고 몰려든 저 개발도상국가의 수도로서의 서울은 지금도 그렇지만 20∼30년 전에도 하나의 거대한 공룡이었다. 아니, 지명마저도 한성에서 경성으로, 다시 서울로 바뀌지 않았던가.

전태일 열사 40주기(11월 13일)를 기념하기 위해 서울의 공간성과 노동자들의 삶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노동시들을 엮은 ‘서울과 노동시’(실천문학사)가 출간되었다. 1900년대부터 최근까지 발표된 시들 가운데 ‘서울’이라는 구체적 공간을 배경 삼아 노동자들의 삶을 형상화한 시들을 시대별로 선별했다.

“국판 8페지-통이나 발채나 낡을 대로 낡은 이것이 내가 부리는 기계다. 나는 날삯 팔십전을 받으려고 아침 일곱시 반에 벤또를 끼고 와서 판을 실고 잉크를 붓고 무릎 살죽바탕……에 기름을 부운 뒤에는 스톱을 재낀다. 그러면 기계는 2마력 동력의 힘을 빌려서 마치 잠자던 동물이 깨어나 뛰는 것처럼 털그럭 털그럭 돌아간다”(권환 ‘기계’ 일부)

시인 권환(1903∼1954)은 이 시를 쓴 1934년, 서울의 한 인쇄공장에서 일하고 있었다. 하루 12시간의 긴 노동이 끝나면 빈 ‘벤또’를 털렁거리며 현저동 산동네, 아내가 끙끙 앓고 있는 토막방을 찾아가는 노동자 시인. 이 시의 풍경은 지금도 도처에서 목격할 수 있는 실존의 현장이기도 하다. 일제로부터의 자본주의 이식 과정에서 경성의 조선인들이 소비의 주체로 부상함과 동시에 반실업자로 전락해가는 ‘이중도시’의 성격을 띠기 시작한 이때, 카프 계열의 시인을 포함한 신경향파적 시인들의 출현과 더불어 경성의 빈곤을 드러내는 ‘노동시’는 문학사적으로도 의미가 적지 않다.

“서울은 언제부터 이렇게 넓어졌나/헐어진 성터에서 낡은 하이힐을 신은/꼬슬머리 처녀가/건빵을 씹으면서/허기진 유행가를 부르고 있다/얼마 전에는 대학의 영문과에서/포크너에게 반했고/헤밍웨이의 킬리만자로 산상의/열렬한 사랑과 미움에/넋을 잃은 처녀가/오늘은 월부 화장품 장사/건빵을 씹고 있다”(박봉우 ‘인왕산 건빵’ 일부)

광복과 한국전쟁을 거쳐 산업화와 자본주의의 상징적 도시로 변모해가는 1970년대 초의 ‘서울’을 그리고 있는 이 시편엔 고학력 실업자의 양산이라는 사회적 문제가 서정적으로 포착되어 있다. 시인은 이어 “서울은 건강한 시늉을 한다/서울은 철없는 사람들이 살기 좋다고 한다”라며 꼬집는다.

1980년대 이후 노동시의 특징 가운데 주목할 만한 것은 이주 노동자들이 서울의 노동자로 편입되고 있는 현실을 그리고 있다는 점이다. “일요일 낮에 이따금 국제공중전화 부스에/줄 서서 통화하던 외국인 노동자들이/평일날 밤에는 목재공장 일 마치고 거리에 나와/서로 알아듣지 못하는 지 손짓발짓하며/내가 더욱 알아들을 수 없는 말들을 했었다/그 앞 지나며 나는 엉뚱한 목수를 생각했었다/같은 말을 하는데도 달리 듣는 이방인 때문에/평생 슬퍼한 사나이 지저스 크라이스트”(하종오 ‘한 아시안’ 일부)

문학평론가 유성호는 “노동시는 앞으로도 더욱 달라진 노동 환경을 반영하면서, 새로운 자본과 노동의 비대칭을 증언하면서, 새로운 시대를 견인해갈 것”이라고 말했다. 실천문학사는 13일 오후 2시에 서울 사간동 출판문화회관에서 ‘서울과 노동시’ 발간 기념 심포지엄을 연다.

정철훈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