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천도 그를 만나면 예술이 된다… 2010년 퀼트 콘테스트 작가상 ‘청일점’ 정민기씨

입력 2010-11-12 17:26


그건 장난처럼 시작됐다. 늘 ‘봉틀여사(재봉틀)’와 호작질을 하는 어머니를 보면서도 무심했던 그였다. 그런데 그날은 왜 그랬을까. 올해 2월 14일, 설 전날이었다. 그는 여느 해처럼 부모님과 함께 장을 봤다. 그리고 파를 다듬기도 하고 대청소를 거들었다. 바로 그날 저녁이었다. 하루 종일 음식 준비하느라 힘들었을 어머니는 하루도 거를 수 없었던지 재봉틀 앞에 앉았다.

“그날 어머니가 머신 퀼팅 연습을 해놓으신 걸 보니 ‘어 이거 드로잉이네’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럼 나도 할 수 있겠다 싶었습니다.”



‘서울국제퀼트페스티벌(SIQF)2010 퀼트 콘테스트’ 머신 퀼트 부문에서 작가상을 수상한 정민기(26)씨. 그와 퀼트와의 첫 만남은 이렇게 우연히 이뤄졌다. 작가상은 4등에 해당되는 것이지만 올해는 2등이 없어 3등이다. 퀼터들 사이에서 그랑프리 수상자에게보다 3등에게 관심이 쏟아지고 있는데, 그 이유는 그가 남성이기 때문이다. SIQF 사무국 손경희 팀장은 “올해가 5회째인데 그동안 남성 수상자는 물론 남성 응모자도 없었다”고 밝혔다. SIQF는 국제적인 콘테스트로 해마다 150여 작품씩 응모된다고 한다.

손에 잡힐까 말까, 서울에 첫눈이 그렇게 살짝 내렸던 8일 오후 서울 수유동 국립4·19민주묘지 입구에 자리한 갤러리 이후에서 정씨를 만났다. 퀼트 콘테스트에서 수상한 정씨의 프로필에는 퀼터로서의 이력은 전혀 없었다. 갤러리 이후를 운영하고 있는 그는 몇 차례 개인전도 연 젊은 화가였다. 그는 “퀼트는 어머니 영역”이라고 소개했다. 어머니 김홍주(53)씨는 숙대퀼트작가회 부회장으로, 아트 퀼트의 베테랑으로 꼽힌다. 자리를 함께 한 김씨는 “이번에 민기 작품을 보고 동료와 후배들이 ‘아들 키우고 이제 그만 내려오라’고 해 자존심 무척 상했다”면서도 얼굴은 해바라기처럼 환했다. 자식 잘되는 것을 마다할 부모가 어디 있는가.

그림도 광목에 즐겨 그린다는 정씨는 “입대했을 때 어머니가 간편하게 접어서 갖고 다닐 수 있는 광목을 보내줘 그때부터 광목을 캔버스 삼아 그림을 그려 헝겊과는 친하다”고 했다. 그는 “붓 대신 바늘로 실을 물감삼아 작업해선지 회화성이 짙다는 평가를 받았다”고 전했다.

‘화가이니 퀼트 작업이 외도 아니냐’고 묻자 그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는 “순수예술의 한 장르로 섬유예술이 있고, 퀼트는 그에 속하는 것이니 영역을 넓히는 것뿐”이라면서 앞으로도 퀼트 작업을 계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밑그림 없이 천에 직접 박음질하는 그의 작품은 기존 퀼트와는 다른 세계를 보여주고 있다. 김씨는 “민기의 작업은 퀼트의 지평을 넓히는 데 한몫하고 있다”고 선배 퀼터로서 평했다.

정씨는 요즘 퀼트가 아줌마들의 취미활동이 아니라 순수예술의 한 장르임을 보여주는 전시회를 펼치고 있다. 서울 인사동 사이에에서 이달 한 달 동안 ‘제1회 이후갤러리 섬유예술전’을 열고 있는 것. 색의 어우러짐을 통해 한국적 정서를 표출해내고 있는 김미식 초대전(1∼9일)을 시작으로 한국 퀼트의 흐름을 이끌어가고 있는 8명의 퀼트 작가들이 출품한 ‘누빔전(10∼16일), 그리고 정씨의 작품 ‘지구바라기 연작’과 머신드로잉 퍼포먼스를 보여 줄 머신드로잉전(17∼23일)이 이어진다. 마지막 일주일은 서양화가 최철전이 준비돼 있다. 한국국제퀼트협회 고재숙 회장은 “단순히 퀼트를 생활 취미로 알고 있는 일반인들의 인식에 전환이 필요했는데, 이번 전시가 퀼트를 생활 속의 섬유예술로 자리매김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며 고마워했다. “누빔전에는 어머님도 출품하셨습니다. 어머니는 늘 기대에 못미처도 믿음으로 저를 지지해주셨습니다. 어머님이 평생의 일로 여기시는 퀼트 전시회를 기획하게 돼 정말 기쁩니다.”

사이에 전시에 이어 ‘섬유, 세상을 감싸다’란 주제로 패브릭 선물전(12월 1∼9일)을 갤러리 이후에서 한다. 많은 이들이 퀼트와 친해질 수 있도록 소품을 대량 준비했다는 정씨의 귀띔이다. 손으로 만드는 퀼트 소품은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것이니 크리스마스 선물로 안성맞춤이다. 정씨가 작가상을 받은 작품은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12월 21∼23일 펼쳐지는 서울국제페스티벌 2010에서 만나볼 수 있다.

김혜림 선임기자 mskim@kmib.co.kr